이학박사 서승조
진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지질유산연구소 이사
전 고성공룡박물관 명예관장

진주 8경 가운데 제2경인 남강 의암(義岩)은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위험하다는 의미의‘위암(危岩)’으로 불렸다. 관기였든 논개(論介)가 위암에서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한 뒤로 바위의 이름이 의암(義岩)과 의기(義妓)로 바뀐 것이다.

의암은 큰 몸통 바위에서 떨어져 나와 물에 잠겨 있는 형태인데, 몸통 바위와 의암 사이에 있는 틈은 나라의 시국 사정에 따라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한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곧 전쟁이 일어나거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틈이 작아졌다가 다시 평화가 찾아오면 틈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암은 본디 곁에 있는 큰 암반에 붙어 있지 않았다. 촉석루에서 의암으로 내려가는 길바닥은 사암으로 된 노두(露頭: 땅 밖으로 밀고 나와 드러난 바위나 지층의 머리)로 표면이 얇게 떨어져나가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암석이 풍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인 양파 구조(onion structure)는 땅 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암석이 지표에 드러나면서 누르고 있던 암석이 없어짐에 따라 압력이 감소되고, 물의 작용으로 화학적 풍화가 이루어지므로 암석 표면이 얇게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다.

촉석루 쪽 몸통바위(암반)에 드러나는 지층면의 방향(층리 방향)은 동쪽으로 기우는데 의암 바위의 층리는 거의 수평이다. 또 지층 단면에서 보이는 갈라진 면(절리면)의 방향도 암반과 의암은 서로 다르다. 이런 사실은 의암이 암반에 붙어 있지 않았다는 뜻으로 암반과 의암 사이의 틈이 커지거나 작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과학적으로 따져 보면, 의암 아래에 모래층이 있거나 또는 의암 자체가 암반 위에 붙어 있지 않고 그저 ‘얹혀 있어서’ 중력이나 물의 흐름 등 자연적 현상인 외부에서 주어지는 힘에 따라 의암의 자세가 변하거나 수평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해석되는 것이다. 의암의 크기는 보이는 면에서 긴 변이 3.65미터이며 짧은 변은 3미터이나 깊이는 알 수 없다. 물에 잠긴 부분 아래로 모래에 묻혀 있는 부분도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