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가 주민들이 수십 년간 이용하던 골목길 주차가 하루아침에 유료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곳곳에서 일명 ‘골목길 분쟁’이 확산하고 있다. 주택가 골목길로 사용하던 자투리땅을 개인이나 업체가 낙찰 받거나 매입한 뒤 재산권 행사 차원에서 주차요금이나 통행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민들과 신규 땅 주인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갈등이 빚어지고 있으며, 전문 중개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개인에게 자투리땅을 소개·알선하는 경우도 많아 주택가 ‘골목길 분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1일 진주시 상평동의 한 주택가 골목길이다. 막다른 이 길에는 주택 9채 출입구가 나 있어 주민들은 수십 년간 통행로와 주차공간으로 이용해왔다. 문제가 시작된 건 지난 6월이며, 최근 경매를 통해 이 골목길 부지를 낙찰 받은 새로운 소유주가 이곳을 주차장으로 운영하겠다며 골목에 주차선을 긋고 안내판을 설치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안내판에는 ‘무단으로 주차 시 비용 징수를 위해 차량 족쇄를 채울 예정이며, 월 주차료 7만 원을 지불하지 않을 경우 이용하지 말아 달라’며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사유지 보호를 위해 펜스를 설치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토지 소유자 A씨는 최근 경매에서 이 주택가 골목길 2개를 주차장 운영할 목적으로 낙찰 받았다. 그는 부산 소재 B 업체를 통해 컨설팅을 받고 연고가 없는 진주지역 땅에 투자를 결정했다. B 업체에 따르면 이 회사의 중개로 개인이 운영하는 유사 형태 주차장만 도내 150여 군데에 이른다고 한다.

A씨가 주차장 영업을 시작한 골목길에는 현재 13개의 주차면이 그어진 상태로 인근 주민 3명이 월 주차를 신청해 이용하고 있다. 인근에 주차 공간이 마땅치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월주차를 결정한 정성화(65)씨는 “동네 주민들은 20~30년을 이곳이 국유지라고 생각해 집을 사고 팔아왔다. 상황이 이렇게 된 후 문제 해결을 위해 시청과 주민센터 등을 방문해 민원을 제기해봤지만 사유지라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시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면 주민들끼리라도 돈을 모아 이 골목길을 사고 싶은데 각 집 주인들이 동의해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A씨 측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는 입장으로 그는 “낙찰 받기 전 주민들이 주차공간으로 이용하던 공간이니 내가 이 땅을 사서 주차장으로 운영하면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며 “주민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해당 부지가 경매에 나온 이상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낙찰을 받아 권리 행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골목이 공공적인 땅이라 누구나 쓰게 해줘야 한다면 이 땅을 강제 집행해 압류됐던 당시 시에서 매입했어야 한다”며 “시나 주민이 원한다면 감정 평가 금액 그대로 넘길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땅 주인과 주민들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만 진주시는 해당 부지가 사유지이기 때문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진주시 관계자는 “해당 지역에 민원이 접수돼 현장 확인을 했다”면서 “주차장 영업 신고가 의무사항이 아닌 데다 사유지이다 보니 주차장 운영에 대해서 시에서 제재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러 가구가 집으로 진입하기 위해 공용으로 사용하는 사실상 도로인 부지를 놓고 갈등이 곳곳에서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땅 주인이 길을 지나가고 싶으면 통행료를 내라고 요구해 기존 주민들과 분쟁이 생기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서유석 창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지자체에서 소유주에게 해당 용지를 매입해 도로의 원래 형태대로 사용하게 하는 등 대안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주 등 많은 도시에 비슷한 부지가 많을 텐데 개인들이 해결하기는 힘들다. 지자체가 공시지가 등을 따져 일괄 매입하는 방향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 경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건물 출입구가 타인의 사유지와 접한 경우가 매우 많은데 사유권 행사에 대해 주민이 권리를 주장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주민이 땅 소유주와 협정을 맺는 것이다. 골목에 접한 주택 주민 등에게 월주차료를 할인해주는 등 서로의 권리를 인정해주고 보완해나가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류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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