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6

5일 째 되던 날 태완이가 병식이에게 갑자기 욕설을 하면서 화를 낸다.

“너 이 새끼, 니가 다람쥐를 잡을 자신이 있다고 해서 등록금도 안내고 다가져 왔는데, 이게 머꼬?, 다람쥐 구경도 못 하고...”

병식이도 나름대로 태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태완이가 갑자기 욕설을 하자 병식이도 발끈한다.

“야, 이 새끼야, 니 와 욕을 하고 그러노, 다람쥐 못 잡은게 어디 내 탓만이가?”

“니가 잡을 수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다람쥐 구경도 못 했으니 당연히 내가 불평을 할만도 하지.”

“내가 먼저 말을 꺼냈지만 막상 다람쥐 잡으러 가자고 먼저 말한 사람은 니가 아이가.”

“니가 자신 있다고 하니까 니를 믿고 가자고 한 것이제, 그러니까 니가 먼저 유인한 죄가 크다 아이가.”

“니가 쌔끼야, 니가 가자고만 안 했어도 내는 가출할 생각은 안 한고 있었던 기라.”

둘은 마침내 멱살잡이까지 가면서 몇 차례 주먹질이 오고 갔다.

태완이는 코피가 터지고 병식이는 입 속이 다 찢어지고 팔과 다리에도 멍이 드는 상처를 입었다.

그 날 저녁, 둘이서 산에서 내려 와 식당으로 갔지만 태완이는 밥 먹기가 싫다고 해서 굶었고, 병식이만 밥을 먹었다.

태완이는 식당 밖으로 나와 식당 뒤로 흐르는 개울가에 앉아 띄엄띄엄 돌맹이를 던지고 있다.

하늘의 별이 너무 많고 또 밝다.

태완이가 사는 동네에도 별이 많지만 이곳처럼 많지는 않다.

별과 가까운 곳에 올라 온 만큼 별이 더 많다.

한쪽 옆을 파먹은 달이 쪼가리 달이 보름달 보다 더 밝게 빛난다.

지리산 중턱까지 올라 왔는데도 별이 저렇게 많아졌는데 저 달 위에 올라가서 보면 하늘에 온통 별 밖에 없을 것 같다

별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는 별이 초롱한 날 밤이면 집 뒤를 흐르는 작은 개울가에 태완이를 데리고 가서 두 사람이 앉으면 딱 알맞을 크기의 작은 바윗돌에 앉아 별을 보면서 저 별은 네별, 저 별은 엄마 별 하면서 꿈을 심어 주었다.

오늘도 그 때처럼 엄마가 우리 별이라고 말해 주던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밤이 이슥해 진 맑은 날이면 나란히 줄 지어 서서 반짝이는 3개의 별이 있는데 가운데 있는 별이 태완이 별이고 그 왼쪽이 아빠 별, 오른 쪽이 엄마 별이라고 하였다.

자세히 보면 가운데 있는 별이 조금 작은 것 같아 태완이 별이라는 엄마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하였다.

엄마 별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태완이에게는 원래 누나가 한 사람 있었으나 태완이가 나기 전에 사고로 죽었다.

사고는 태완이 누나가 갓 돌이 지났을  무렵 청마루에 잠시 눕혀 놓고 부엌에 들어가서 쌀을 씻는 사이에 밖에서 무언가가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보니 태완이 누나가 청마루에서 떨어져 댓돌에 머리를 찧고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고, 급히 병원에 데려 갔으나 이미 절명을 한 후였다.

청마루와 댓돌 사이는 그다지 높지 않아 떨어 진다고 하더라도 죽을 정도의 거리는 아닌데 너무나 허무하게 아이가 죽어 버렸다.

태완이 엄마가 태완이 아버지와 결혼 한 후 얼마되지 않아 잘 가는 절에 가서 사주를 본적이 있는데 이때 스님은 태완이 아버지에게 업보가 많아 자식이 없다는 말을 하였지만 태완이 엄마는 그 말을 무시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을 얻게 되자 돌팔이 중이라면서 아예 그 절에 가지도 않았지만 돌백이 딸을 잃고 나서 그 스님의 말이 마치 음흉한 예언을 한 것 같아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지만 내색은 낭ㅎ고 지났다.

딸을 잃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임신을 하였고, 이번에는 떡두꺼비 같은 아들 태완이를 얻게 되자 태완이 엄마는 혹시 태완이를 또 사고로 잃게 될가봐 노심초사하면서 주머니속의 유리잔 같이 조심스럽게 아이를 키웠다.

태완이 엄마의 사주를 볼 때 태완이 아버지의 업보가 많아 자식이 없다는 스님의 말에 태완이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붉어졌다가 창백하게 바뀌었지만 이것을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심지어 스님도 보지 못하였다.

태완이 엄마가 태완이를 키울 때 과하다 싶을 정도로 태완이의 행동을 억제하였다.

마당에는 늙은 감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약 1미터 정도 높이에 가지가 갈라져 그 부분까지는 쉽게 올라 갈 수가 있는데도 엄마는 그 곳에도 못 올라가게 하였고, 밤이 되면 아예 집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동네 뒷산에서 내려오는 개울이 있지만 장마철에나 개울이라고 할 정도의 물이 흐르는 곳으로서 평소에는 겨우 발목 정도 밖에 오지 않는데 엄마는 태완이 혼자서는 그 개울에도 얼씬 하지 못하게 한다.

태완이 엄마의 감독이 유별났지만 태완이도 어렸을 때부터 조용한 성격이라 엄마가 그렇게 걱정을 할 정도의 위험한 놀이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태완이가 엄마를 배신하고 가출하여 지금 이 생고생을 하고 있다.

지금쯤 엄마는 밤에 잠도 못 자면서 태완이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울고불고 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매의 모습도 가슴에 저며 온다.

할매가 태완이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주고 있지만 태완이는 할매에게 애정보다 무언가 모를 두려움이 할매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었고, 커 감에 따라 그 무서움의 정도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태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할매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약해졌고, 할매도 옛날에 비하여 많이 부드러워 졌지만 그래도 할매는 태완이가 결코 넘지 못할 태산으로 다가왔고, 그 태산은 항상 두려움으로 태완이의 가슴 한쪽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재갈재갈하는 물 흐르는 소리가 이제는 태완이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되어 흐른다.

엄마는 “태완아 어디 있노?” 하면서 울면서 부르고 있다.

태완이는 엄마 생각을 지우려고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앉은 채 던지면서 물수제비를 떠는데 갑자기 병식이가 나타 난다.

저녁을 안 먹은 태완이가 안 됐는지 병식이는 가게에 있는 빵을 몇 개 사다가 슬그머니 태완이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권한다.

“새끼야, 이런 건 니나 먹으라.”

“태완아, 미안테이. 내가 화를 안 낼라고 했는데, 니가 먼저 욕을 한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아이가. 우리 친구 아이가, 내가 사과할게.” 병식이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태완이에게 사과를 한다.

“머스마 새끼가 사과는 무신 사과고, 됐다 마, 니 말대로 어디 다람쥐 몬 잡은게 니 탓이가, 이 동네 다람쥐가 안 사는 것 때문이제.”

병식이가 사과를 하자 태완이도 갑자기 누구러진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오늘 우리가 한 번 싸웠다고 해서 앞으로 니가 내를 피해 다니지는 않겠제?, 우리 친구아이가?

태완이도 둘도 없는 친구인 병식이에게 갑자기 화를 낸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면서 사과를 한다.

병식이도 태완이를 잘 알고 있다.

어떨 때는 정말 잘 참다가도 어떤 경우에는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불쑥 화를 내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다 흐려 놓고는 또 금방 사과를 한다.

“니, 화났나?, 미안하다, 사과할게.“

사과를 할 때는 언제나 마지막으로 묻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니가 내 안 만나줄건 아니제?’ 이다.

태완이는 병식이가 만나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하는 소심장이인데 왜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화를 참지 못하는지... ..., 병식이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식이가 사 준 빵을 안 먹는 듯이 하면서도 금새 한 개를 먹어 치운 후 한 개를 병식이에게 주고, 남은 한 개의 봉지를 뜯으면서 작심한 듯 말을 한다.

사방은 벌써 캄캄하다.

산간벽지에 밤이 되면 오가는 차는 완전히 끊어져 버린다. 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고 더욱이 인적도 끊긴 지리산 중산리 촌 마을은 그야말로 암흑천지다.

시끄럽게 개골 대던 개구리들도 태완이가 돌맹이를 하나 물에 던지자 개구리 소리마저 잠잠해 지니 이제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되었다.

잠잠해진 개구리들이 다시금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자 한참동안 가만이 듣고 있던 태완이가 불쑥 집으로 가자는 말을 꺼 낸다.

“병식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 ...”

“아무래도 답이 없겠다. 공연히 고생만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자.”

“우리가 집 나온 지 며칠 됐다고 벌써 가자 카노?”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사귀부터 알아본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우리가 다람쥐 잡기는 글렀는 것 같은 기라.”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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