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6

처음에는 들리지 않던 재갈재갈하는 물 흐르는 소리가 이제는 태완이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되어 흐른다. 엄마는 “태완아 어디 있노?” 하면서 울면서 부르고 있다.

태완이는 엄마 생각을 지우려고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고 앉은 채 던지면서 물수제비를 떠는데 갑자기 병식이가 나타 난다.

저녁을 안 먹은 태완이가 안 됐는지 병식이는 가게에 있는 빵을 몇 개 사다가 슬그머니 태완이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권한다. “새끼야, 이런 건 니나 먹으라.”

“태완아, 미안테이. 내가 화를 안 낼라고 했는데, 니가 먼저 욕을 한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화가 났다 아이가. 우리 친구 아이가, 내가 사과할게.” 병식이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태완이에게 사과를 한다.

“머스마 새끼가 사과는 무신 사과고, 됐다 마, 니 말대로 어디 다람쥐 몬 잡은게 니 탓이가, 이 동네 다람쥐가 안 사는 것 때문이제.” 병식이가 사과를 하자 태완이도 갑자기 누구러진다.

“그래, 나도 미안하다, 오늘 우리가 한 번 싸웠다고 해서 앞으로 니가 내를 피해 다니지는 않겠제?, 우리 친구아이가?

태완이도 둘도 없는 친구인 병식이에게 갑자기 화를 낸 것에 대해서 미안해 하면서 사과를 한다.

병식이도 태완이를 잘 알고 있다.

어떨 때는 정말 잘 참다가도 어떤 경우에는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불쑥 화를 내어 전체적인 분위기를 다 흐려 놓고는 또 금방 사과를 한다. “니, 화났나?, 미안하다, 사과할게.“

사과를 할 때는 언제나 마지막으로 묻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니가 내 안 만나줄건 아니제?’ 이다.

태완이는 병식이가 만나주지 않을까봐 걱정을 하는 소심장이인데 왜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화를 참지 못하는지... ..., 병식이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식이가 사 준 빵을 안 먹는 듯이 하면서도 금새 한 개를 먹어 치운 후 한 개를 병식이에게 주고, 남은 한 개의 봉지를 뜯으면서 작심한 듯 말을 한다.

사방은 벌써 캄캄하다.

산간벽지에 밤이 되면 오가는 차는 완전히 끊어져 버린다. 다니는 차도 보이지 않고 더욱이 인적도 끊긴 지리산 중산리 촌 마을은 그야말로 암흑천지다.

시끄럽게 개골 대던 개구리들도 태완이가 돌맹이를 하나 물에 던지자 개구리 소리마저 잠잠해 지니 이제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 되었다.

잠잠해진 개구리들이 다시금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하자 한참동안 가만이 듣고 있던 태완이가 불쑥 집으로 가자는 말을 꺼 낸다. “병식아,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 ...”

“아무래도 답이 없겠다. 공연히 고생만 하지 말고 그냥 집으로 가자.”

“우리가 집 나온 지 며칠 됐다고 벌써 가자 카노?”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사귀부터 알아본다고 했잖아, 아무래도 우리가 다람쥐 잡기는 글렀는 것 같은 기라.”

“니 낚시 할 때 밑밥 주는 거 모리나? 지금까지 우리는 밑밥만 준기라, 이제부터 수확할 때가 된 기라.”

“야, 밑밥을 주마 고기들이 몰리기라도 하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준 밤을 아예 건드리지도 않잖아, 다람쥐가 아예 없는기라.”

“우리가 방법이 잘못 되었는지, 아니면 진짜로 다람쥐가 없는긴지 우째 아노?”

“자 봐라, 그라고 니가 내 묻는 대로 대답을 해 봐라, 알았제?”

“그래 해 봐라.”

“만약시 다람쥐가 없다카모 우리는 우째야 되노? 예를 들어서 말이다.” “... ...”

병식이가 대답이 없다 “태완이가 자신이 묻고 자신이 대답한다.

“다람쥐가 없다면 돌아가야 겠제?” “없으면 돌아가야지, 그런데 없다는 보장은 누가 하노?”

태완이가 버럭 역정을 낸다.

“새끼야 내가 묻는데 니는 답만 하기로 안 했나?” “알았다, 물어 봐라.”

“다람쥐가 한 마리도 없는게 판명이 나면 돌아가야 되겠제?”

“분명히 다람쥐가 한 마리도 없다카모 분명히 돌아 가야겠제?”

태완이는 분명히 라는 말을 거푸 씀으로서 자신의 말에 힘을 싣는다. “하모.”

“그런데 다람쥐가 있기는 있는데 우리가 못 잡는다 카모 우리가 잡는 방법이 잘못 된거 아이가?

“맞제.” “그라마 다람쥐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제?” “그렇지”

“그런데 지금 우리한테 그 방법을 제대로 가르쳐 줄 사람이 있나?” “없지, 당연히 없지.”

“그러면 그 사람을 만나야지?” “하모.” “어디서 그 사람을 찾아야 하노?” “... ...”

“그 사람을 찾아서 방법을 배울 때 까지 우리 기다려야 되제? ”... ...“

“그라마 일단 우리가 그 사람을 만나 방법을 배울 때 까지 집에 가야 되는기 아이가?”

병식이는 태완이의 논리 정연한 말에 대응할 말이 없다.

태완이가 이렇게 논리 정연한 구석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태완이 말이 맞다. 그리고 일단 집에 들어가는 것도 맞다.

병식이도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혼 날 생각을 하니 차라리 굶어 죽을망정 집으로 들어가기는 싫다. 이왕 집을 나왔으니 빈손으로 들어가기는 싫고 무엇인가 하나쯤은 성취해서 가고 싶은 마음에 숲이 울창한 강원도로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싶다.

“태완아, 기왕 집을 나왔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은 좀 그렇다. 집에 면목도 없고..., 일단 강원도로 자리를 옮겨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만약 그 때도 실패하면 우리 깨끗하게 집에 들어가자.”

“니 말을 듣고 따라 나왔다가 지금까지 실패를 했잖아. 그런데 또 니 말을 믿고 강원도로 가자고?”

“내 말을 믿으라는게 아니고 한 번 더 도전해 보자는 거다, 실패를 했다고 하지만 우리가 몇 번이나 도전을 해 봤나? 겨우 한 번 해 보고 안 된다고 포기해 버리면 세상에 성공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기라.”

“그래도 가능성이라도 보여야 되는데, 아예 싹도 안보이니 이건 일찍 포기 하는게 좋다는 생각이다.”

“실패는 병가의 상사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 한 번 실패했다고 포기해 버린다면..., 세상에 성공한 사람들은 전부 단 한 번 만에 다 성공한 사람들이가?”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