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주의 환경상식 108-23

네덜란드 탐험가가 처음 이 섬에 상륙한 날이 1722년의 부활절(Easter)이었기 때문에 이스터 섬이라고 불리 운다. 1888년에 칠레 령이 된 이 섬은 면적이 120㎢정도로서 서해안의 안면도 크기인데, 칠레 본토에서 3790km 떨어진 동태평양에 있다.

이 섬이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은 섬에 흩어져 있는 ‘모아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석상 때문이다. 이 작은 섬에는 887개의 모아이 석상이 남아있다. 석상의 길이는 2m에서 9m까지 다양한데 평균 높이는 6m 정도이다. 석상은 부족장이나 중요한 인물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모아이는 항상 바다를 등지고 마을 쪽을 바라보는 위치에 세워진다. 아마도 마을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처음 이 섬을 발견했을 때에 약 2000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갈대로 만든 엉성한 오두막이나 동굴에 살면서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다. 섬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었고, 식량이 부족하여 식인 풍습까지 있었으며 거의 원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류학자와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석상과 이들의 생활을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이스터 섬에는 야자나무로 이루어진 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숲과 공동체는 붕괴되고 원시생활로 되돌아가게 되었을까?

이 섬의 멸망은 부족 간의 과도한 경쟁으로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민들은 땔나무를 얻거나 농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삼림을 과도하게 벌채하였다. 야자나무를 비롯한 자연 자원을 이용하여 경쟁적으로 무분별하게 모아이 석상을 만든 것도 멸망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주민들은 채석장에서 돌망치와 정으로 깎은 석상을 나무로 만든 로프로 묶어 나무 굴림대에 실어 현재의 위치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외부와 단절된 섬에서 인구가 늘어나고 숲의 황폐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부족들은 전쟁에 돌입하였다. 그리하여 1640년경에는 숲이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과 소수의 원시인들만이 남게 되었다.

이스터 섬을 점령한 칠레정부는 초원에 목장을 만들고 원주민들을 한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칠레 정부는 이스터 섬의 1/3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후 1980년대 초반에 이스터 섬에 비행장을 만들고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시작하였다.

최근에 원주민들은 칠레 정부를 상대로 땅 찾기 소송을 진행 중인데,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리조트 개발을 막고 환경파괴를 막기 위하여 관광객 수를 제한하라고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리기도 하였다. 이스터 섬의 비극은 외딴 섬의 환경파괴와 유일한 자원인 숲이 사라졌을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려주는 교훈으로서 많이 인용되고 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