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김형택
전 진주시 총무국장
전 진주시의회 의원

농사일에는 잡초 뽑기가 매우 중요하다.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질 좋고 많은 수확을 거둘 수가 없다. 그래서 모내기를 마친 후 얼마 있다가는 제초작업과 병충해 방제를 한다. 그리고 피 뽑기를 해야 한다. 피는 벼포기 사이에서 돋아나는 잡초의 일종이다. 벼농사에는 피뽑기를 빼 놓을 수 없다. 그것은 밭농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농작물 사이사이에 돋아난 잡초를 뽑아내어야 배추, 고추, 오이 등이 잘 자란다. 장미꽃은 화단이 아닌 채소밭에서는 한낱 잡초에 불과 하다. 마찬가지로 소담스럽게 자란 배추일지라도 화단에서는 뽑혀질 수밖에 없다. 꽃은 꽃의 자리에서, 배추는 배추의 자리에서 그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의사는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 할 때가 아름답고, 요리사는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 때 멋이 있다. 의사가 청진기를 들고 고기 앞에 있으면 이상한 일이고, 요리사가 칼을 들고 환자 앞에 있으면 위험한 일이다. 의사는 의사대로 요리사는 요리사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일을 할 때 그 가치는 빛나는 것이며, 자연이나 사회나 그렇게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일을 부여 받는 것은 아니다. 나무는 결을 따라 커야 좋은 목재가 되듯, 인간은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소질과 능력을 개발하는 교육을 통해서 자신을 가꿔 나간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서 일을 할 때 모든 가치가 발현된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세상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분수에 맞지 않는 엉뚱한 자리에 가서 일을 그르치고, 그 자리를 욕되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공이 아니면서 자격증이 없으면서, 근무경력이 없는 인사를 특정한 자리에 임명하는 인사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남들의 피해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한다. 의학지식도 없으면서 쌍꺼풀 수술을 하려고 한다든지, 운전기술도 없으면서 면허증을 내려고 하면 자신은 물론 남의 인생도 망치게 된다. 그리고 남이 시키는 일만 해야 할 사람이 남을 시키는 위치에 있다면 그로 인해 빚어지는 부작용은 또한 클 것이다. 우리는 짧은 법 지식으로 세상을 운전하려는 자들이 모든 질서를 깨뜨리는 것을 알고 있다.

옛날 중국의 진한의 개국공신 장량은 고조 사에 양궁장이요 적국멸 모신 망이라고 했다. 이 말은 높이 나는 새를 잡은 뒤에 좋은 활은 갈무리 하는 법이고, 적국을 멸망시킨 뒤에 그 일을 도모한 자는 죽음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설 때와 물러날 때의 슬기를 가르쳐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즉 한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려고 전장에서 싸울 때는 자신(장량)의 지모와 책략이 필요했으나, 통일된 이후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자신 같은 무인은 필요 없다고 물러나는 슬기를 보였던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장량·소하와 더불어 한나라 개국 3걸의 하나인 한신은 그것을 못했기 때문에, 한고조가 열후들의 무소불능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정책에 의하여 반신하의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하였던 것이다. 아울러 당 태종 이세민이 나라를 창업할 때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생각된다.

우리 인간들은 대부분 과대망상증에 걸려있는 것 같다. 이 자리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과 욕심에서 자신은 물론 남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식과 부모,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내와 남편, 학생과 교사, 사원과 사장은 자신에게 맞는 위치와 역할이 있다. ‘손님이 빗자루를 들면 그 집안은 망한다’는 우리의 옛말에서 걸 맞는 일에 충실해야 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말 역시 우리에게 소중한 의미를 준다. 자기 자신을 아는 방법은 제 분수에 맞게 자기의 직분과 사명을 알고 인생을 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데서 인생의 행복이 비롯되며,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서 모든 불행과 비극이 생긴다. 내가 아는 나의 얼굴은 거울을 통해 보는 허상이다. 실제적 자신을 가늠하기 어렵기에 교육을 “마음의 밭에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보이는 허상보다는 그 내면의 실체인 자신에게 충실하고, 자신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과욕은 화를 자초한다. 인간은 자신에게 맞는 위치에 있을 때 가장 소중한 행복과 기쁨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이 노력이 없어도 저절로 얻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통과 싸우며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어렵고 짜증난다고 참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근시안적인 눈으로 오늘만을 바라보지 말고 어제가 오늘로 이어졌으며, 오늘은 또 내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식하며, 좀 더 거시적으로 무아의 입장에서 분수를 알며 살아가야겠다. 그리하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받아들여야 할 것은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로 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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