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가 김윤세
전주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인산의학 발행인

풍교에 배를 대고 잠을 청한다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데 / 서리는 하늘에 가득하구나

강가 단풍나무, 고기 잡는 등불을 보며 / 시름에 잠겨 잠을 청한다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 깊은 밤 종소리는 들려오는데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월락오제상만천 강풍어화대수면

고소성외한산사 야반종성도객선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 즉 ‘풍교라는 다리에 배를 정박하고…’라는 제목의 시이다. 장계의 자는 의손懿孫이며 호북성 양양襄陽 출신으로서 검고원외랑檢考員外郞이라는 벼슬을 역임한 바 있다.

풍교는 강서성 소주蘇州의 서남쪽 교외에 있는 다리이고 고소성 역시 소주의 성이며 한산사 또한 소주의 풍교진에 있는 고찰이다. 장계는 이 시로 인하여 일약 이름이 알려졌으며 그에게는 장사부시집張祠部詩集 1권이 있으나 이 시 이외의 시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늦가을 밤,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데 하늘에는 서리가 가득하다. 풍교에 배를 정박하고 강가의 단풍나무와 고기 잡는 등불을 바라보며 시름에 겨워 잠을 청하는데 멀리 고소성 밖 한산사에서 삼경三更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시인이 그린 늦가을의 정취가 어린 풍광風光은 한 폭의 산수화로 완성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여실하게 보고 느끼도록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까마귀 소리까지 듣게 해준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다가오는 길목에서 맞닥뜨리는 장계의 이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물결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절묘한 물결이여

와보기 전에는 못 본 것이 한스러웠는데

와 보고 돌아갈 제는 별것이 아니었네

여산 안개비와 절강의 절묘한 물결일 뿐…

廬山煙雨浙江潮 未到千般恨不消

到得還來無別事 廬山煙雨浙江潮

여산연우절강조 미도천반한불소

도득환래무별사 여산연우절강조

중국 북송 때의 시인이자 정치가이며 시문서화詩文書畵 모두에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던 소동파蘇東坡·1036~1101의 ‘관조觀潮’라는 제목의 시이다. 소동파의 본명은 소식蘇軾이고 아버지는 소순蘇洵이며 동생은 소철蘇轍로서 모두 당송팔대가에 든다.

이 시는 깨달음의 경지를 노래한 ‘소동파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잘 알려진 시이다. 절강은 중국 절강성浙江省의 성도省都 항주杭州에 있는 양자강 하류의 전당강錢塘江을 말한다. 절강은 수나라 때 황하와 양자강을 남북으로 연결한 대운하의 마지막 종점이고, 양자강 물은 항주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항주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이고, 소동파가 관리로 통관, 지주를 역임했던 곳이다. 중국 4대 호수 중의 하나인 서호西湖에는 소동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절강의 조수潮水는 강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 풍광이 웅장하고 기세가 절묘하여 세계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중국은 땅도 넓으려니와 아름다운 산과 강과 그 밖의 풍광이 뛰어난 곳이 적지 않다. 여산에 안개비가 내릴 때의 풍광과 전당강으로 조수가 들어오고 밀려가는 절묘한 모습과 그 소리를 어떤 말이나 글로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그 풍광을 전해 듣기만 하고 가보지 못하면 마음의 한으로 남아 천 가닥 만 가닥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다가 직접 그곳에 가서 그 풍광을 보고는 “와! 과연 여산의 안개비요, 절강의 절묘한 물결이로다” 라는 말만 되뇔 뿐 다른 어떤 말이나 글로도 여실如實하게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올 뿐이다.

깨달음이란 직접 자신이 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체험하는 것이지 스스로 체험하고 깨닫지 못한 이에게 그 미묘한 풍광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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