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6

그러나 태완이는 완고하다.

“나는 돌아 갈란다. 정 하고 싶으면 니 혼자 강원도로 가라.”

“니 정말 그리할끼가?”

“그래, 나는 결정했다, 집에 갈란다.”

“새끼...니, 너무한다. 물론 내가 처음 말을 꺼냈지만 니가 같이 가자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나도 집을 나오지는 않았을끼다. 그라고, 당장 집을 나가자고 한건 네다. 결과적으로 니가 간다고 하니까 나도 나온기라.”

“니가 내 한테 책임을 떠넘기나?”

“이건 책임 문제가 아이고, 말하자면 그렇다는 기다.”

“시끄럽다, 또 싸우겠다. 야튼 내는 집에 들어가고 싶다. 어무이, 아부지가 많이 걱정하실 것 같다.”

병식이는 난감한 현실 앞에서 집에 가자는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태완이를 버려두고 혼자 강원도로 가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병식이도 태완이의 완고한 고집을 꺾을 수 없어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병식이는 공연히 옆에 있는 나무를 발로 ‘꽝’ 차고서는 그 나무에 기대면서 쪼그려 앉는다.

“혼이 날 각오로 집에 가자, 설마 때리 죽이기야 하겠나, 그라고 우리는 혼나는데는 도사들 아이가...”

태완이가 병식이를 설득한다.

“태완이 너거 아부지나 어무이는 너무 순하기 때문에 니는 괘안치만 나는 다리 하나는 부러질 각오를 해야 한데이.”

“그래도 집에 가자, 설마 자식 놈 다리를 부러뜨리기야 하겠나. 그라고 나는 엄마도 보고 싶고, 또 아부지 혼자서 농사일을 하는게 너무 미안해서 안되겠다, 할매도 마음에 걸리고.”

“혼이 안 나겠나?”

“야, 세상에 가출했다 집에 들어가는데 혼날 각오는 해야 안되나?, 나는 혼날 각오를 하고 집에 들어 갈란다.”

태완이가 확고부동한 결심을 보이자 마침내 병식이도 마지못해 응하였지만 주저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뭘 하다가 왔는지, 누가 먼저 가출하자고 유혹을 했는지에 관해서 말을 맞추기로 하였다. 그리고 맞아 죽더라도 비굴한 모습은 보이지 말고 당당하게 대처하되 절대 친구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기로 약속한다.

즉, 누가 먼저 가출을 하자고 바람을 넣었는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병식이는 병식이대로 자신이 먼저 제의했다고 말하고 태완이는 태완이 대로 자신이 먼저 유혹했다고 말하므로서 상대방의 부모로부터 미움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제법 어른스러운 결의도 하였다.

꼴에 삼국지를 읽었는지 병식이가 ‘도원결의’를 빗대어 ‘지리산결의’라고 말하면서 “도원결의는 뭉치는 결의지만 우리의 지리산결의는 째지는 결의” 라고 말하고는 킥킥 대며 웃는데 그 웃음속에는 아이들의 발랄함 대신 패잔병의 씁쓸한 웃음만이 들어 있다.

태완이 7

중산리에서 진주시외버스터미널로 온 태완이와 병식이는 그 자리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 탔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굳은 표정에 묶여버린 둘은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태완이는 상대적으로 느긋한데 병식이는 건드리기라도 하면 금새 울음보를 터뜨릴 것 같은 처량한 모습이다.

병식이의 얼굴을 힐긋 본 태완이는 병식이를 위로해 준답시고 제법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병식아, 겁나나?”

“니는 겁 안나나?, 너거 엄마 아부지는 순한 사람들이니까 니가 그렇게 느긋하지만 우리 아부지, 엄마 같아봐라. 니는 지금 또 도망간다고 난리 칠거다.”

“그렇지, 그런데 나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라고 병식아, 너거 아부지, 엄마가 무섭다 캐도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결국 혼이 날 때 아부지, 어무이요 다시는 안 그러겠심더 한번만 용서해 주이소 하고 바짝 엎디리 봐라. 그라마 그걸로 끝 인기라. 그라고 길게 봐서 1주일만 지나마 니하고 나하고 또 헤헤 거리면서 장난을 칠낀데...두고 봐라 틀림 없데이.”

병식이 얼굴이 좀 펴진다.

“마, 내 약속한다. 일주일만 지나면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끼다.”

“그래 큰 맘 묵고 들어가자.”

병식이가 비로소 웃으면서 말을 한다.

병식이는 태완이가 느닷없는 성질만 부리는 줄 알았는데, 제법 사람을 설득할 줄도 알고, 논리도 정연한 것 같아 꽤 괜찮은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산리에서 버스에 타기 전에 다람쥐 잡는 도구들은 전부 버렸는데 쥐덫 6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태완이는 아깝기도 하고, 또 촌에서는 쥐들이 많이 설치므로 아주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말로 가지고 가자고 하였으나 병식이는 버리고 가자고 하여 의견이 맞지 않았다. 티격태격하던 끝에 결국 태완이가 가져가기로 하면서 쥐덫 6개를 철사줄로 엮어 들고 갔다.

집이 가까워짐에 따라 아이들은 불안함과 패잔의 쓰라림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난다.

버스가 한 없이 달려 지구를 한바퀴 쯤 돌았으면 하는 바램이 두 사람들 고민 속에 들어 있는데 야속한 버스는 오히려 제 시간 보다 더 빨리 도착한 것 같다.

버스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그들은 냉큼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버스 정류장이 있는 가게의 담벼락 옆에 붙어 서서 무슨 말을 하고 들어 갈 것인지 또 궁리를 하면서 잔머리를 굴린다.

이미 다 짜고, 말까지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마을에 도착하니 무언가 생경스럽기도 하고 안도감도 드는 게 먼 길을 떠돌아 다니다가 고향에 돌아 온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인 것 같다.

눈에 익은 집과 먼 산, 마을을 휘감고 돌아가는 어렸을 때 부터 들어 온 귀에 익은 정겨운 시냇물 소리까지 그대로 인데 아이들의 눈과 귀에 그런 것들은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둘은 사람들 눈을 피하여 담벼락에 바짝 붙어 마을 어귀의 동정을 살피지만 그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 가게 안에 있던 이장 마누라가 먼저 두 녀석을 보았다.

이미 두 아이가 동반하여 가출하였다는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기 때문에 이장 마누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 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이 태완이하고 병식이 아이가?”

“어디?, 아무도 안 보이는데”

아이들은 혹시 누가 볼까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게 옆 골목길로 숨어 버렸기 때문에 가게할멈은 보지 못하였다.

“맞데이, 틀림없이 가출한 태완이하고 병식이가 맞데이, 아이고, 태완이 엄마는 아가 없어 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내가 퍼뜩 가서 알려 줘야지”

이장 마누라는 가게 할멈과 잡담을 나누다가 아이들을 보는 순간 가게 문을 열고 골목으로 뛰어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내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하여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갑자기 뒷문으로 나간 것은 아이들이 보고 도망을 칠까봐여서다.

한달음에 태완이 집으로 달려 간 이장마누라는 숨을 헐떡이면서 태완이 엄마에게 아이들이 돌아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장마누라의 표정과 말투는 마치 자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양 늠름하다 못해 자랑스럽기 까지 한 표정이다.

곧이어 병식이 집으로 달려갔으나 병식이 집에는 아무도 없어 알려 주지 못하였다.

시장 마누라는 시장이고, 장군 마누라는 장군이다. 마찬가지로 이장 마누라도 이장이기 때문에 서둘러 이장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장마누라는 그 역할을 다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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