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7

“저 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이 태완이하고 병식이 아이가?”

“어디?, 아무도 안 보이는데”

아이들은 혹시 누가 볼까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가게 옆 골목길로 숨어 버렸기 때문에 가게할멈은 보지 못하였다.

“맞데이, 틀림없이 가출한 태완이하고 병식이가 맞데이, 아이고, 태완이 엄마는 아가 없어 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내가 퍼뜩 가서 알려 줘야지”

이장 마누라는 가게 할멈과 잡담을 나누다가 아이들을 보는 순간 가게 문을 열고 골목으로 뛰어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내실로 통하는 뒷문을 통하여 부리나케 달려 나간다. 갑자기 뒷문으로 나간 것은 아이들이 보고 도망을 칠까봐여서다.

한달음에 태완이 집으로 달려 간 이장마누라는 숨을 헐떡이면서 태완이 엄마에게 아이들이 돌아 왔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장마누라의 표정과 말투는 마치 자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양 늠름하다 못해 자랑스럽기 까지 한 표정이다.

곧이어 병식이 집으로 달려갔으나 병식이 집에는 아무도 없어 알려 주지 못하였다.

시장 마누라는 시장이고, 장군 마누라는 장군이다. 마찬가지로 이장 마누라도 이장이기 때문에 서둘러 이장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이장마누라는 그 역할을 다 하였다.

태완이는 가게 담벼락에 붙어 선 채 쥐덫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병식이는 불안함을 감추려고 땅바닥에 박혀 있는 돌을 발로 툭툭 걷어차면서 빼려는 시늉을 하고 있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은 얼굴을 하고 서 있는데 담 모퉁이 가까운 곳에서 귀에 익은 이장 마누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태완이는 이장마누라의 목소리를 듣고 담모퉁이에 머리만 빼꼼 내밀어 동정을 살피려고 하는데 갑자기 이장 마누라가 나타나고 연이어 태완이 엄마가 나타난다.

“아이고마, 너거들 아직까지 여기 있었네.”

이장 마누라가 호들갑스럽긴 여전하다. 이장 마누라의 ‘여기 있네’ 하는 말 속에는 승리자의 자랑스러움이 들어 있음이 두 녀석의 귀에도 들어 온다.

“태완이 엄마, 야들이 여기 그대로 있네.”

태완이와 태완이 엄마 사이에 이장 마누라가 서 있는 꼴이 되었고, “어디?”하는 태완이 엄마의 말에 이장 마누라가 냉큼 비켜 선다.

태완이와 태완이 엄마가 모퉁이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다.

태완이 엄마는 모퉁이 끝에 서서 코 앞에 서 있는 태완이를 바라보면서도 “어디?, 어디?”하면서 허우적 거린다.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당황하면 눈앞에 두고도 안 보인다더니 태완이 엄마가 딱 그대로다.

자기보다 덩치가 더 큰 태완이를 눈앞에 두고도 뱅글뱅글 돌면서 ‘어디, 어디’ 소리를 반복한다.

그런 엄마가 안스러웠던지

“엄마, 나 여기... 엄마 내가 돌아 왔네, 태완이가 돌아 왔데이.”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제대로 눈을 맞추면서 “아이고 이 놈아...”하면서 울기부터 시작한다.

“어무이요, 미안테이...”

엄마가 태완이 손을 잡는다.

“이 노무 자슥아 어디 갔다 왔노?, 니가 죽은 줄 알았다 아이가, 와 엄마 속을 그렇게 썩히노., 어디보자, 어디보자” 한꺼번에 말을 쏟아 내면서도 아이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손을 꼭 잡고 있는데 태완이는 동네 사람들이 부끄러워 손을 빼려고 해도 엄마가 워낙 단단히 잡고 있어 손을 뺄 수가 없다.

“마, 집으로 가자, 아부지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하면서 집으로 잡아끈다.

태완이는 엄마를 먼저 본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부지는 어디 있능교?”

“정자나무 밑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겠지, 기별을 놔 났으니 곧 집으로 올끼다, 퍼뜩 집에 가자.”

“아부지가 화를 많이 안 내덩교?”

“이놈아, 화를 안 낼 수가 있나, 학교도 다 빼묵고, 우짤라고 하는 긴지 하면서 걱정이 태산이고, 그래서 날마다 술만 마신다.”

“어무이요, 아부지가 내를 안 때리겠능교?, 때리면 내는 또 집을 나갈랍니더. 요즘 세상에 아무리 자식이라도 맞고는 몬 사는 기라요.”

태완이는 마음이 여린 엄마를 이용해서 매를 피하려는 작전을 쓴다.

“알겠데이, 다 큰 자식인데 때리기야 하겠나, 그라고 만약 니를 때릴라카먼 내가 결사적으로 막아 줄끼다. 그라고 할매도 불러서 니를 몬 때리도록 하꾸마, 걱정하지 마래이. 그라고 제발 가출한다는 말은 하지 마라. 엄마는 니가 없으먼 한시도 몬 사는기라.“

“정말이지요?”

태완이는 엄마의 다짐을 받는다.

“하모, 하모, 니는 아무 걱정 하지 마라. 엄마가 다 막아 줄끼다. 내 새끼를 누가 함부로 건드리노, 아부지라도 니는 몬 건드린다.”

태완이는 엄마 손에 잡혀 집으로 가고 있지만 언 듯 보아서는 모자간에 정답게 손을 잡고 가는 것 같이 보인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뒤 따라가는 병식이는 부드러운 태완이 엄마를 보면서 제 엄마의 우악스런 모습을 상상한다.

어느덧 태완이의 집에 당도하였다.

병식이 집은 태완이 집을 지나 한참을 더 가야 한다. 태완이 집이 가까워지자 병식이는 태완이가 제 집에 들어가면 같이 따라 들어갈까, 아니면 곧장 집으로 갈까하고 망설인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집에 들어가고 싶지만 부모를 뵐 면목도 없고, 성질 급한 아버지, 어머니가 당장에 몽둥이를 들고 난리를 칠게 뻔해서 자꾸 망설여 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에 태완이 집에 당도를 했고, 거의 동시에 태완이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다.

지서가 집에 도착하는 것을 본 아이들이 거의 동시에 허리를 굽혀 절을 한다.

“잘 계셨습니꺼?”

병식이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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