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머리 모으니 집채크기 여섯무더기

정기룡 장군이 쓰던 옥대. 상주 충의사 보관.
정기룡 장군이 쓰던 옥대. 상주 충의사 보관.

1597년 8월 체찰사 이원익이 권율, 곽재우와 더불어 의논하여 장군을 경상우도 28개군 병사를 지휘하는 대장으로 기용하고 적을 격퇴하도록 명하였다. 정기룡 장군은 15일 아침 병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고령현 녹가전에 진을 쳤다. 그리곤 밤에 척후를 보내 관죽전에서 왜군 복병 백 여명을 베고 돌아왔다.

16일 새벽 장군은 전병력을 출동시켜 용담천을 사이에 두고 왜군과 남북으로 대치하였다. 양군이 활과 총을 쏘며 진퇴를 거듭하다가 이동현 쪽 길목에 군사를 매복하고 패전하여 달아나는 것처럼 하자 왜군이 전군을 동원하여 추격하니 이동현 고개에 다다라 북을 울려 반격을 가했다.

공이 앞장서 진격하니 적의 장수 하나가 흰말을 타고 장군과 대적하였다. 장군이 한번 접전으로 적장을 사로 잡았다. 이어 아군 측이 돌진을 시작하고 매복해있던 군사들이 뒤에서 공격하였다. 싸움이 끝난 후 적의 머리를 모아 놓은 것이 큰 집채만 한 크기로 여섯 무더기나 되었다. 체찰사 이원익은 승전보를 접하고 조정에 상신하여 장군을 절충장군으로 올렸다.

왜군을 묶어두고 상주백성을 피란시키다

1597년 9월20일경 정기룡 장군은 퇴각하는 왜군 가등청정의 대군을 보은 현으로부터 상주로 넘어가는 적암에서 만났다.

이른 아침 안개가 짙게 끼여 가까운 거리도 분별할 수 없었으나 대군의 수레와 말 울음 소리가 땅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안개가 걷히고 1만 여 적병을 본 우리 군사들은 모두 두려움에 얼굴빛이 변했다.

이때 정기룡 장군은 홀로 적 앞으로 나아가 활을 당겨 적을 꺼꾸려뜨렸다. 왜군이 큰 병력이 뒤에 있을 것으로 의심하여 가까이 오지 못하고 대치한 것이 2일이나 되었다. 이 사이 상주에 소식을 전하여 백성들이 모두 피란가게 했다. 400에 불과한 병력이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후미에 처진 적병을 섬멸하였다.

문찬인 하동 향토사연구소장 / 정기룡장군 기념사업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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