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문재인 정부가 북 핵 및 통일 문제 등 한반도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은 그간 남북 당국이 접촉해온 결과를 통해 이미 드러났다. 이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성과라고 내놓은 9.19 군사합의는 군사적으로 스스로 무장해제하여 국방안보를 훼손시켜가며 북한의 선의에 목을 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조치라고 위장 홍보하고 있다. 그렇게 판단한 구체적인 근거 없이 그냥 김정은이 약속을 지킬 위인이라는 것이 근거의 전부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이 미사일과 방사포를 10차례나 발사하였다. 이 정부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 정부가 내심으로는 오히려 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할 수도 있다.

외교적으로는 지소미아 철폐를 통해 한‧미‧일 삼각협력 체제를 망가뜨리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 내면적인 목적은 반일감정을 주도하여 이 프레임으로 내년 총선을 압도적으로 가져가겠다는 사욕에서 출발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좌파정부의 집권연장을 위해 국가안보의 눈과 귀를 스스로 막겠다는 조치인 것이다. 한‧일 관계는 양국 모두 민족주의적 사고가 왕성하여 한번 금이 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 신중히 다루어야 할 사안이지만, 고집스럽게 반일 감정 프레임을 걸어 훼손시켰다. 중요한 것은 이 조치가 주한미군의 안전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 일본, 중국 세 나라가 합종연횡을 하며 팽팽한 세력 균형을 유지해오고 있는 동아시아 질서에서 한국의 존재는 아주 미약하지만 지소미아 폐기의 파장은 결국 한‧미‧일 협력 체제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중국을 이롭게 해주고 나아가 북한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으로서는 동맹국 문재인 정부의 역주행 현상이 참으로 기분 나쁜 일이다. 이와 같은 군사‧외교적인 대북 조치가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맹목적으로 북한만 바라보는 이 정부의 남북한 문제 해결방식은 그 발상부터가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민족끼리 내부적으로 힘을 합치면 남북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북한의 대남전략 방침을 스스로 반기면서 행동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이는 국제정세와 시대상황을 모르고 민족번영에 반역하는 조치이다. 애당초 한반도 문제는 동아시아에서 지배력을 키우려는 소련‧중국의 국제사회주의 확산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의 충돌에서 발생되었다. 냉전은 종식됐지만 동아시아 주도권 세력 다툼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그래서 주변 강대국을 움직이지 못하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요원한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국제사회의 역학적 현실이다. 이들 주변 강대국을 움직일 동인을 찾아내어 이를 우리 민족의 공동발전과 보조를 맞춰나가는 전략이 절실히 필요하다. 북한의 대남전략인 우리민족끼리 주장에 동조하고 이를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좁은 시각은 이번 문재인 정권으로 끝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4일 유엔 총회에 참석했다. 원래 국무총리가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미‧북 정상회담 개최설이 나돌자 갑자기 계획을 바꾸어 대통령이 가겠다고 나선 것 같다. 물론 북한 문제를 지렛대 삼아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이 야기한 정치적 난관을 극복하기 위한 국면전환 카드로 활용하려는 것도 숨은 목적일 것이다. 그간 북한은 미‧북 회담에서 남한은 빠지라고 별 욕을 다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오로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미‧북 대화의 중재자로 끼어들어 이를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한 보폭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하게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한다. 비핵화 협상이 북한의 비핵화를 말하는 것인지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인지 여부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한반도 비핵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북한의 핵위협에 ‘공포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필요시 주한미군의 전술핵 반입 시도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미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한반도 평화의 개념을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 북한의 핵과 무력을 해제하여 전쟁 없는 평화를 이끈다는 의미인지, 그냥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봐달라고 김정은의 선의에 매달려 긴장 국면만 완화해 달라는 가짜 평화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이 해소될 수 있다. 정책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지만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이제 우리 국민은 구체성이 없는 허황된 북한카드에 속아온 경험에 익숙하여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른 미봉책에는 함부로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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