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7

“이놈들아, 너거들이 사고를 치고 댕기는데 우째 잘 있을끼고?”

자전거를 타고 헐레벌떡 집으로 온 지서는 멀쩡하게 돌아 온 아이를 보고 우선 반가웠지만 퉁명스런 대꾸를 한 후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아이의 잘못에 대하여 따끔한 훈계를 하므로서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므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화가 난 듯이 묻는다.

“너거들 그동안 어디 갔다 왔노, 이눔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가출을 했으면 죽던지 살던지 그래야지 며칠 됐다고 벌써 집에 들어오노.”

태완이와 병식이는 지서를 한번 힐긋 쳐다 본 후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아이들이 아무 말이 없자 뒤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병식이를 쳐다보면서 다그치듯이 묻는데 병식이가 고개를 숙인 채 곁눈질로 지서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친다.

“너거, 그동안 어디 돌아다니다 왔노?”

눈이 마주친 병식이는 찔끔하여 엉겹결에 대답한다.

“지리산...”

“뭐라꼬, 지리산이라고, 너거 지리산에 빨갱이 잡으러 갔었나?”

“아니예, 요즘 빨갱이가 어디 있능교, 빨갱이가 아니고 다람쥐 잡으러 갔심더.”

병식이는 태완이 아버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이 이번에는 빤히 쳐다보면서 말대꾸를 한다.

“다람쥐나 빨갱이나 그 놈이 그 놈 아이가, 옛날에는 빨갱이들이 지리산을 다람쥐처럼 숨어 다닌기라.”

아이들이 그 말끝에 피식 웃는다.

“웃어?, 이노마 자식들이 그래도 웃어?”

지서는 야단을 치는 입장에서 말실수를 했다는 걸 느낀다.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세우려고 목소리를 낮게 깔았는데 쓸데없이 빨갱이 소리를 하여 아이들을 웃게 만들어 스스로 엄격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깨버렸다.

태완이 엄마가 거든다.

“아이고 어디 갔다 왔으면 뭐 할끼요, 멀쩡하게 돌아 왔으면 됐제, 너거 밥이나 묵고 돌아 댕깄나?”

“예, 밥은 꼬박꼬박 다 챙기 묵었심더”

“그래 잘 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밥은 챙기 묵어야제”

하면서 힐끗 지서의 눈치를 살피는데 지서가 또 고함을 지른다.

“뭐가 잘 했어, 당신도 그라마 안돼.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야단을 처야제. 뭐, 잘 했다고?”

“아 내가 가출한 것 보고 잘 했다고 했능교, 가출을 하더라도 밥은 묵고 댕기야 되니까, 안 굶고 다닌거 보고 잘 했다고 한 거졔.”

엄마는 태완이를 옹호하려고 일부러 태완이 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역정을 낸다. 고함을 지른 것은 옆집에 사는 할매 귀에까지 들리라고 한 것이다. 태완이 아버지의 역정이 분명 한풀 껶였다.

“됐다, 할 말은 좀 있다 하고 우선 씻기나 해라, 연탄 집 쥐새끼가 할배 왔능교 하고 인사라도 하겠다”

엄마의 작전이 주효했다. 엄마의 고함 소리를 들은 할매가 “와 고함을 지르고 난리들이고” 하면서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다가 풀죽은 배추단 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완이와 병식이를 발견하고 “아이고 우리 태완이가 왔네, 우리 태완이가 돌아 왔네. 이놈아 니가 없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태완이는 할매가 연거푸 ‘우리’ 라는 표현을 하므로서 한 가족과 같은 느낌을 주려고 애를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하튼 아주 강력한 구원군이 나타났다.

할매가 있을 때는 아버지가 갑자기 부드러워 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일단 할매한테 정중하게 인사를 해야 한다.

“할매요, 미안심더. 말씀도 못 드리고...”

태완이는 일부러 말씀도 안 드리고 갔다고 하므로서 용돈을 받은 사실, 할매가 알고 있다는 사실도 감추었다.

“괘안타, 잘 돌아 왔으면 됐다. 너거 때는 안 굶고 댕깄나?”

“에.” 두 아이가 동시에 대답한다.

지서는 이미 아이들을 야단칠 수 있는 분위기가 깨어 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아버지로서 야단을 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서는 야단을 치지 않는 핑계로 할매에게 슬그머니 처분을 떠넘긴다.

“할매요, 야들을 우짜면 좋겠심니꺼, 다시는 몬 그라도록 몽둥이 찜질을 해야겠지예?”

“다 큰 아를 때린다고 되겠나. 잘 타일러야지...”

그러면서 태완이 엄마를 바라본다.

“안그러나 태완이 엄마?”

“맞심더, 맞고 말고예, 아이들을 때리면서 키우는 세상은 이제 지난 거라예, 그라고 야들이 이제 맞을 나이도 아이고예.”

분위기가 부드러워 졌다. 아버지 말투도 누그러졌고 할매와 엄마가 자리를 지키는 한 더 이상의 고함소리도 없을 것이다.

잘 난 아들은 분위기가 다소 부드럽게 변했다는 걸 알고 이제 아버지에게 따지듯이 묻는다. 그러나 그 말투는 기가 죽어 있음이 분명하다.

“아부지요, 할 말이 있심더, 아니 물어 볼 말이 있심더”

“그래 말해 보거래이, 니가 뭐 잘 했다고 도망갔다 온 주제에 아부지에게 따지듯이 말을 하노, 그래 말 해 봐라, 함 들어보자“

그러면서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면 안 되고, 그런 모습을 병식이에게 보이기가 싫어서 병식이를 일단 내보내려고 한다.

“병식아, 너거 집에서 엄마, 아부지가 새 빠지게 기다린다, 퍼뜩 집에 가 봐라.”

“우리 집에는 지금 아무도 없을 겁니더.”

“니 지금 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서 그렇제? 그러기에 이놈들아 와 나쁜 짓하고 돌아 다니노.”

“우리가 나쁜 짓은 안 했심더.”

“ 이놈들아 집을 나가가 엄마 아부지 걱정 끼치는게 나쁜 짓이지 뭐가 나쁜 짓이고?”

지서는 병식이가 주저거리면서 냉큼 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자 태완이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니가 물어 볼 말이 뭐고, 함 들어 보자”

그러면서 다시 병식이를 힐끔 쳐다보자 병식이도 눈치를 채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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