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근 교수

(이야기 1)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중 한 명인 세종대왕도 재임 시절 아찔한 실수를 할 뻔했다. 일본이 대장경판(국보 제 32호)을 달라고 조르자 통째로 넘기려다 신하들의 만류로 미수에 그친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일본은 대장경판 청원을 하면서 진귀한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세종의 마음을 흔든 선물의 정체는 예로부터 정력의 상징이자 신비의 영약으로 알려진 침향(沈香)이었다. 일본은 대장경판을 수중에 넣기 위해 조선 땅에선 나오지 않는 그 귀한 약재를 한두 근도 아니고 무려 서른 근을 조선 왕에게 보낸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침향은 중국에 가면 구할 수 있으나 쉽게 구할 수 없으니, 갑절을 주더라도 가하니 예조에게 이를 논하라.’라는 구절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침향은 예로부터 귀하디귀한 약재다.

(이야기 2) 청나라에 쫓긴 명나라가 원군을 요청하며 조공국인 조선의 왕 인조에게 보낸 선물 또한 침향이었다. 조선 시대 침향이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은 약재였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조선의 왕들이 침향의 도움을 받은 기록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경종은 자신의 지병이었던 간질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향이 들어간 ‘신비침향환’을 먹었고, 변비와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으로 고생했던 숙종은 ‘팔미지황탕’에 침향 5푼을 더해 상복했다. 팔미지황탕이 정력 보강의 기본적 처방인데 여기에 초강력 스테미너 보충제인 침향을 추가한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야기 3) 침향의 흔적은 뜻밖의 형태로 남아 있기도 하다. 경남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에는 자그마한 돌비석이 있다. 높이 1.6m, 너비 1.3m 성인 남자의 가슴께 정도 높이다. 언뜻 보면 별다른 것 없는 돌이다. 전각과 이정표가 없다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보물 제 614호)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원석 그대로에 표면만 다듬어 비문을 새겼다. 한 자 한 자 내용을 더듬으면 비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매향비를 승려와 불자 4,100명이 모여 매향의식을 했음을 부처님과 후순들에게 알리려 세운 비석이다. 때는 고려 우왕 13년(1387년) 이들은 침향목(향나무 혹은 참나무)을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었다. 천년이 지나 미륵불이 오실 때쯤엔 나무토막이 침향이 되어 있으리라 기대했다.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현세기가 시작될 즈음에 대대적인 ‘침향 수색’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전국의 주요 매향비 부근(5 군데)을 뒤졌지만 한 토막도 찾지 못했다.

(이야기 4) 처음 침향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건 신라시대이다. 「삼국사기」의 한 대목이다. ‘왕이 지시하기를 “관료들이 귀중한 수입품인 침향을 앞 다투어 사치품으로 쓰고 있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는 진골 계급을 포함하여 침향 사용을 엄히 금지한다.”

침향은 신앙과도 깊숙이 연관된다. 불교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6가지 공양물 중 하나로 향을 꼽는다. 향 외에는 등, 차, 꽃, 과일, 쌀을 공양한다. 공양하는 향 중 제일로 치는 것이 침향이다. 2005년 해인사 비로자나불을 개금할 때 불상 내부에서 침향이 발견되기도 했다.

침향(沈香)은 이름 그대로 잠길 침(沈)에 향기 향(香), 즉 물속에 가라앉는 향기 나는 향나무다. 열대, 아열대 우림지대에서 자생하는 아킐라리아(학명은 Aquilaria agallocha Roxb)에서 채취하여 만든 향으로 불교경전은 물론 성경에도 언급되는 향 가운데 하나이다. 침향(沈香)은 향기가 강하기 때문에 더운 지방서는 방부효과와 함께 향료로 이용되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제작할 때도 사용되었고, 십자가에서 숨진 예수님의 시체에 침향을 함께 넣어서 장례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침향(沈香)은 수지(樹脂) 함유량에 따라 품질이 결정된다. 수지 함유량이 많을수록 물에 가라앉게 되는데 함유량이 적으면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뜨게 된다. 침향(沈香)은 태울 때 향기가 부드러우면서 진할수록 상품(上品)에 속하며, 색깔이 녹자색(綠紫色)인 것이 상품이고 그 다음이 검은색이며, 갈색은 상품에 속하지 않는다. 침향의 가격은 싼 것은 1g에 몇 백 원에서 10만원까지 호가할 정도로 품질이 좋은 것은 금(金)보다도 더 비싼 경우도 있다고 한다.

침향(沈香)은 용연향(龍涎香 : 향유 고래가 대왕오징어 등을 먹고 소화하지 못해 토한 토사물이 원료다), 사향(麝香 : 사향노루 수컷의 향낭에서 채취한 분비물을 건조한 것을 말한다)과 함께 세계 3대 향으로 꼽힌다.

「동의보감」에는 ‘침향의 성질은 따뜻하고 맛이 매우며 독이 없으며 풍수나 독종을 낫게 하며 나쁜 기운을 없애고, 명치끝이 아픈 것을 낫게 하며 신정(腎精)을 돕고 성 기능을 높이며 냉풍으로 인해 마비된 증상을 고치며 급성 위장병으로 토하고 설사하거나 쥐가 난 것을 낫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침향(沈香)은 수승화강(水昇火降 : 한의학의 용어로 차가운 성질인 수기(水氣)가 위로 올라가 가슴과 머리를 식혀 주고, 반대로 뜨거운 성질인 심장의 화기(火氣)는 내려가 복부와 손발을 따뜻하게 해주는 의미)의 약재로 대변될 만큼 인체 기운을 조절하는 기능이 탁월한 약재다. 침향(沈香)은 건강 관련 논문을 통해 심장의 열기를 아래로 내리고, 신장의 차가운 음기를 데워 전체적으로 기력을 증진 시키는 건강식품으로 소개 되고 있다. 하복부에 냉감을 많이 느끼고 월경불순이 있거나, 남자의 경우 정력이 감퇴되고, 소변을 자주 보는 증상에 탁월한 반응을 일으킨다. 이러한 효능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침향의 주요 성분인 베타셀리넨 때문이다. 이 물질은 콩팥에 기운을 불어 넣어 기력을 회복시키고, 침향에 들어있는 미네랄, 유황성분의 항균 작용으로 신장에 염증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시킨다. 때문에 침향(沈香)은 만성신부전 환자에게도 큰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침향(沈香)은 천연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아가스피롤 성분이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신경 이완과 불면증 해소를 돕는다. 또한 정유 성분 델타-구아이엔은 신경안정, 구토 방지, 뇌 진정, 신경계 안정에 도움을 주어 머리나 눈이 맑아지도록 하는 데 도움이 있다고 한다. 또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호흡 곤란, 급성 위장염으로 위장이 차고, 딸꾹질이 심해 구토를 일으킬 때 효과가 있다. 이 밖에도 혈관 운동성 장애로 안면이 붓고 배뇨가 곤란할 때 다른 약물과 배합해서 사용한다. 그리고 노인이 기운이 허약하여 변비가 있을 때도 활용한다. 침향(沈香)을 불에 태우면 상쾌한 향기를 내며 타는 특징이 있어 향으로도 매우 좋은 재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래서 침향을 피우면 주변 공기를 빠르게 정화하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오며, 두통이 사라지고 집중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침향(沈香)은 혈액순환을 개선시키는 효능이 있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으면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지면서 전반적인 신체의 기능도 떨어진다. 이때 수분의 대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체내에 수분이 많아지면서 부종이 심해지게 된다. 특히 발의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아 하체 부종이 심해질 수 있다. 침향은 혈액순환 개선을 통해 부종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침향은 소음인 체질에는 좋은 약제이나, 몸에 열이 많은 소양인 체질이나, 태음인 체질 가운데 얼굴로 열이 잘 달아올라서 얼굴색이 시뻘건 사람은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침향을 먹을 때는 탕약에는 갈아서 타서 먹고 , 가루약이나 알약을 만들어 먹을 때는 따로 보드랍게 가루 내어 나중에 섞어서 먹는다. 한번 먹을 때는 0.1~ 0.2g 정도의 양이 적당하다.

침향이 들어간 처방으로는 소합향원(蘇合香元), 공진단(供辰丹) 등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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