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7

니가 물어 볼 말이 뭐고, 함 들어 보자”

그러면서 다시 병식이를 힐끔 쳐다보자 병식이도 눈치를 채고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 준다.

병식이가 밖으로 나가자 엄마가 일단 마루로 올라가서 앉아서 얘기하자고 하여 모두 마루로 가서 앉는데 할매는 가족끼리 긴한 말을 하는데 자신이 끼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 엉거주춤한 상태로 서 있다.

이를 눈치 챈 지서가 할매한테 같이 마루로 올라가자고 권한다.

“모처럼 식구끼리 모였는데 내가 뭣 땜에 끼이노.”

엄마가 나선다.

“하이고, 할매가 넘인교, 한 식구 아인교. 퍼뜩 올라 가입시더.”

엄마의 권유가 떨어지기 무섭게 마루에 걸터 앉는다.

“그래 니가 내 한테 따지듯이 묻는데 그기 뭐고?”

“아부지요, 아부지는 아들이 좋심니꺼, 돈이 좋심니꺼?”

지서는 아들의 황당한 질문에 잠시 당황한다. 이놈이 무슨 뜻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질문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지서는 정해진 정답을 읽어 내려가듯 말한다.

“그래, 당연히 아들이 돈 보다 중요하지, 니 뭐 땜에 그런 질문을 하노?”

“아부지요, 내가 학교에 낼 등록금을 다 써뿓지 뭡니꺼, 만약시 돈이 중요하다카먼 지는 이 길로 다시 집을 나가서 그 돈을 다 벌 때 까지 안 들어 올랍니다.”

엄마는 아들이 또 가출한다는 말에 혼비백산하여 끼어든다.

“뭐라카노, 뭐라카노, 안된데이, 돈이 뭐가 중요하노, 내 아들이 중요하제, 천만금을 준다한 들 내 아들하고야 바꾸겠나, 그 돈 다 써도 괘안타, 내 아들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된다 아이가. 안 그렁교 태완이 아부지요?”

엄마가 지서에게 대답을 강요한다.

지서는 응겁결에 고개를 끄득이므로서 동의한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할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 나면서

“아이고 내 정신 좀 봐라, 수건에서 하도 냄새가 나서 삶아 놓고 왔는데 눌어 붙겠다... 퍼뜩 가 봐야지.” 하면서 이내 내 달린다. 아마도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자리를 비켜 주려고 일어 나는 것이 분명하다.

할매가 일어 나서 나가는 것을 본 태완이가 다시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부지요 등록금을 다 썼뿓는데 이제 우짜면 되겠심니꺼?”

“니는 우쨌으면 좋겠노?”

태완이는 마음 속에 넣어 둔 말을 작심한 듯 꺼낸다.

“지는 예, 공부도 못하고, 학교생활도 재미가 없으니까 그냥 집에서 아부지를 도와 농사나 짓고 싶심더”

“그라마 니가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말이가?”

“... 예.”

태완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단호하게 대답한다.

“니, 이놈 학교 며칠 빼묵고 선생님한테 매 맞을까봐 학교를 안 댕길라고 하는거제?”

아입니더, 남자가 그까짓 매 몇 대가 겁나는 건 아입니더. 지는 예 학교 공부에 취미도 없고, 또 성적도 안 올라가니까 정말 댕기기가 싫습니더.“

그래도 임마야 인자 조금만 있으마 중학교 졸업인데 중학교 졸업장은 따놔야 안 되겠나.“

엄마가 또 끼어든다.

“그래 태완아,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옛날에는 공부를 하나도 안하고도 다 잘 살았다. 너거 아부지도 옛날 보통학교 밖에 더 나왔나, 너거 아부지가 보통학교 댕길 때도 공부는 꼴찌만 했다, 내가 다 안다, 너거 아부지는 거짓말을 하지만...”

“무신 소리하노, 그래도 반에서 내 보다 공부 몬하는 놈이 꼭 몇 놈씩은 있었다”

“하이고, 이 영감 거짓말 하는 것 좀 보래이, 내가 마 다 알고 있다 아이가, 아 앞이라고 자존심 세운다고 거짓말 하지 마래이.”

“아이다, 진짜다”

태완이는 분위기가 반전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야단을 맞을 것 같지는 않다고 안심을 했는지 똥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지가 버럭 화를 낸다.

“됐심더, 지금 와서 아부지 학교 성적이 뭐가 중요 합니꺼?, 나도 예, 아부지를 닮아 공부는 쬐께 못하지만 공부 말고는 뭐든지 자신 있슴니데이”

태완이가 아버지를 닮아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하자 지서는 황당하다는 듯이 정색을 한다.

“이노마가 무신 소리하노?, 네가 공부를 몬하는 건 전적으로 너거 엄마를 닮은기라”

엄마가 대뜸 나선다.

“하이고 이 영감이 생사람 잡네, 나가서 동네 사람한테 물어 보까? 학교 댕길 때 누가 공부를 잘 했는지.”

“합천에서 시집온 니가 처녀 때 공부를 잘 했는지 몬 했는지 마을사람들이 우째 아노?”

지서는 태완이 때문에 공연히 부부싸움이 날까봐 얼른 말을 돌린다. 태완이는 평소에는 얌전하다가도 느닷없이 화를 내는 통에 언제 저 아이가 돌발행동을 할는지 예측이 안된다.

아이가 화를 내기 전에 빨리 이 분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마누라와 그런 말다툼을 해봐야 득 볼게 하나도 없다.

“니 학교 문제는 오늘 밤에 너거 엄마하고 진지하게 상의해 보고 낼 아침에 말해 주께, 일단은 내일 학교 갈 준비는 해라.”

태완이는 대답을 하지 않고 뭔가 불만에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태완이 엄마가 태완이의 표정을 보고 빨리 결정을 하지 내일 아침까지 갈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하면서 재촉한다.

“내는, 태완이가 학교 가기 싫다하면 안 보내는게 맞다고 생각 한데이, 물론 공부는 많이 하면 좋겠지만 하기 싫은 것을 끝까지 한다고 해서 공부로 성공할 것도 아니고, 차라리 지가 하고 싶다는 농사를 짓게 하는게 지한테도 좋고, 집에도 좋고...”

“알았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면 태완이 원하는 대로 하자.”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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