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가 김윤세

落照吐紅掛碧山 寒鴉尺盡白雲間

問津行客鞭應急 尋寺歸僧杖不閑

防牧園中牛帶影 望夫臺上妾低鬟

蒼煙古木溪南路 短髮樵童弄笛還

낙조토홍괘벽산 한아척진백운간

문진행객편응급 심사귀승장불한

방목원중우대영 망부대상첩저환

창연고목계남로 단발초동농적환

붉은 빛깔 토하며 지는 해는 푸른 산에 걸리고

겨울 까마귀 날갯짓하며 흰 구름 새로 날아가네

나루를 묻는 나그네의 말 채찍질 급해지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 지팡이 한가할 새가 없네

초원에서 풀 뜯는 소 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지아비 기다리는 아낙네 긴 머리 늘어졌네

푸른 안개 자욱한 고목 시내 남녘 길 따라

짧은 머리 어린 나무꾼 피리 불며 돌아오네

조선 영조임금 시절에 암행어사로서 눈부신 활약상을 보여 이름을 크게 드날린 박문수朴文秀의 시이다. 이 시는 ‘낙조落照’라는 시제로 치러진 과거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박문수의 과거급제 시이다.

지는 해가 푸른 산에 걸렸을 즈음의 세상 풍광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 보여주고 있다. 본관은 고령高靈으로서 경종 3년(1723)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 검열로 뽑혔고 이듬해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영조 즉위년(1724)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되었다.

영조4년(1727) 정미환국으로 다시 사서司書에 등용되었으며, 영남안집어사嶺南安集御史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였다.

영조 5년(1728)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사로도순문사四路都巡問使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 전공을 세워 경상도관찰사에 발탁되었다. 이어 분무공신奮武功臣 2등에 책록되고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영조 7년(1730) 대사성·대사간·도승지를 역임했으며, 이듬해에는 영남감진어사嶺南監賑御史로 나가 기민饑民의 구제에 힘썼다.

영조가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할 때 명문 벌열名門閥閱 중심의 인사 정책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으며, 4색四色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의 실實을 강조하였다. 특히, 군정軍政과 세정稅政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 논의에 중요한 몫을 다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박문수는 4차례에 걸쳐 어사로 파견되었던 행적이 허구로 각색되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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