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태완이 8

“봐라, 내 말이 맞제?”하면서 들고 온 굴비를 내 놓는다.

할매의 갑작스런 말에 태완이 엄마가 무슨 말인지 몰라 되 묻는다.

“뭐가예?”

“아이고 니, 그새 까 묵었나?, 내가 1주일 안에 태완이가 돌아온다고 안 했나?”

“아이고 그렇제, 할매요, 우째 그렇게 딱 맞추심니꺼, 인자 마 진주 장에 가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도 되겠심더.”

태완이는 할매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을 먹는다.

결국 태완이는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고 농사일을 하기로 하였다.

태완이 9

병식이는 제 엄마, 아버지한테 죽으라고 얻어맞고 다시 학교에 다니기로 하였으며, 이튿날 등교를 하자마자 담임선생님한테 또 매 칠갑을 하였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병식이한테 몰려 와서 다람쥐 잡던 이야기를 듣는다.

병식이는 한 마리도 못 잡았으면서도 이야기 만큼은 전문가 같이 말한다.

병식이는 억지로나마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병식이는 그래도 고등학교 까지 나온 덕분에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고 군입대를 앞두고 고향에 내려와 잠시 머물다가 영장을 받고 입영할 수 있었다.

태완이는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여 군대에도 갈 수 없는 현실에 공부를 안 한 후회를 하였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진주로 나가 공장에도 다닐 수 있고 하다못해 남의 집 점원 노릇이라도 하여 고향을 떠날 수 있었을 것인데 중학교 졸업장도 없는 이제는 별 수 없이 아버지를 도와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에 이르기까지 흙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태완이가 한 3년 농사를 짓다보니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에 점점 지겨워 질 무렵 진주 상평공단에서 공원생활을 하던 친구가 자신이 일하는 농기계 부품을 가공하는 공장에서 직공을 모집하는데 다른 공장에 비하여 대우가 좋다고 하면서 공장에 다녀 보라는 권유를 하였고, 이말을 들은 태완이는 공장생활이 땅을 파는 농촌생활보다야 낫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아버지를 졸라 공장에 취업해 보았지만 고등학교를 나온 또래의 공원과 꼭 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터무니없이 작았고, 더군다나 고등학교를 나온 애들이 여자친구 자랑, 월급 자랑을 하는 것을 보고 배알이 틀어져 태완이가 처음 입사할 때부터 건방을 떨던 놈을 작살 나게 패 주고 그길로 회사를 그만 두고 집으로 내려와 버렸다. 채 두 달도 근무하지 않았다.

태완이가 공장에 취직할 무렵은 겨울철로 접어 든 농한기였으므로 지서는 농한기 동안 공장생활을 해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에 취업을 승낙했다. 태완이가 진주 공장에 취직한 후 휴일이 되면 집에 들러 아버지의 잔잔한 일들을 거들어 주곤 했다. 그런데 태완이가 공장에 취업한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공장을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와 버린 것이다.

“아부지, 저 돌아 왔심니더.”

“공장은 우짜고 갑자기 왔노?”

“공장은 지께 아니라서 그대로 놔 두고 내만 왔심더.” 썰렁한 우스게 소리를 먼저 함으로서 아버지 마음을 좀 편하게 돌린다.

공장에 다닐 때는 한 달에 두 번 노는 날이 있었고, 노는 일요일이 되어야 집으로 왔는데 평일 날 갑자기 찾아 온 아들을 보고 반갑다는 마음보다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공장 때리 치았심니더.”

“와?“

“공장에 다니기가 싫어서예...”

“니, 공장이 농사 짓는거 보다 더 좋다고 안 했나?, 일도 수훌코, 또 수입도 농사 지을 때 보다 더 많고...”

“아인기라예, 농사는 그래도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논에 물도 대 주고, 흙을 파기도 하고, 벼도 심고, 고추도 심고해서 자꾸자꾸 하는 일이 바뀌니까 지겹지도 않고 여름내내 공생하다가 가을이 되면 그 풍성한 쌀이나 고구마, 고추를 따니까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재미도 있고 마음도 넉넉해 지는데 공장일은 아침부터 밤에 퇴근할 때 까지 한 자리에 앉아 죽도록 같은 일만 한다 아입니꺼. 베아링 깎을 때는 몇 날 며칠 동안 베아링만 깎고 예, 핀을 깎을 때는 죽으라고 핀만 깎아야 된다 아입니꺼. 기름 냄새가 꾀죄죄하게 끼인 꽉 막힌 공장에서 맨날 천날 같은 일만 해 보이소 정말 지겨워서 몬합니더.“

“원래 공장에 다닐라먼 그런 고생은 각오해야 되는거 아이가.”

“아입니더, 공장에 댕기밨자 미래가 없는기라예, 미래가...”

“그라고예, 농사는 정직하다 아입니꺼, 요놈의 공장은 예, 저 놈이나 내나가 일은 꼭 같이 하는데 월급이 다르다 아입니꺼, 어떨 때는 내가 일을 더 많이 했는데도 옆엣 놈이 월급은 더 많이 받고예, 안 정직한 기라예. 그래서 공장에 다니는 걸 포기 했심더.”

“그라마, 우짤끼고?”

“마, 집에서 농사나 지을 랍니다, 아무래도 농사가 배짱도 편하고 또 내가 장남이니까 내가 아부지를 도와드려야 할 것 같아 고마 왔심니더.”

아버지 지서는 태완이의 속도 모르고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 온 것으로 알았다.

“그래, 니 잘 생각 했데이, 머니머니 캐도 농사가 제일인기라, 농삿꾼은 흙을 파 묵고 살아야제, 아스팔트, 콩크리트만 있는 도시에서는 몬 사는기라.”

지서는 아들이 자신과 꼭 같은 전철을 밟는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기나 아들은 역시 농삿꾼의 피를 이어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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