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지향점이 명확했던 '조국 사태' 이후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반문(反文)' 구호만 외칠 뿐 수권(受權) 정당이 되기 위한 철학이나 정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의 텃밭인 '영남안일주의'도 문제로 거론된다.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도 "마냥 지켜보기 힘들다" "구태의연한 모습에 질린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자유한국당이 난맥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한 10월 중순 이후다. 여권과 전면전을 벌이는 사이 총선이 6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의 정체성조차 설정하지 못한 채, 좌충우돌하고 있다.

황교안 당대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의 완전한 성취가 목표"라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 주도 4차 산업혁명 시대, 미국·중국이 '강대강'으로 부딪치는 긴박한 동북아 정세 등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구체 사안에 대한 정책 대안은 찾아볼 수가 없다.

당 차원에서 관련 분야 전문가를 영입하거나 세미나 등을 통해 담론을 공유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야당으로서 가뜩이나 약했던 정책 정당으로서 면모가 거의 사라졌다"고 했다.

한 비례대표 의원은 "당 전체가 '반문' 구호에 매몰되면서 정통 보수 정당으로서 기본적 정체성 구축에 실패했다"고 했다.

자유한국당이 지역적 텃밭인 영남을 중심으로 골수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영남 안일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 의원 110명 가운데 영남 지역 의원은 절반 가까운 45명. 한국갤럽 10월 말 조사에 따르면, 대구·경북(43%)과 부산·울산·경남(31%)의 당 지지율은 다른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예전과 같은 공천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남 의원들은 현재 지지율만 유지해도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는다고 여긴다. 중도층 흡수를 위한 외연 확장에 수동적이며 공천을 받기 위한 내부 투쟁에 골몰한다. 중도를 포함한 보수 통합에 가장 소극적이거나 반감을 내보이는 세력도 이들이다.

문제는 당 지도부 상당수를 영남 의원으로 기용한 황 대표도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에 미온적이라는 점에서 수도권 의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신상진 의원(성남 중원)은 본지 통화에서 "'조국 사태'로 잠시 한국당에 관심을 가졌던 지역 민심이 다시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며 "중도층을 포섭할 수 있는 혁신안을 내놓으려면, 영남 중심의 당 운영과 영남 중심 사고방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예전의 사고방식 ‘썩은 말뚝이라도 공천만 받으면 된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참패하는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상현 의원(인천 미추홀을)은 "황 대표가 유승민 의원과 일부 중도를 아우르는 보수 대통합을 해낸 뒤 혁신을 통해 총선을 치러야 승산이 있다"고 했다.

당내에선 의사결정 구조가 당 대표와 원내대표로 '이원화'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당 대표가 원외일 경우, 원내 협상 상황이나 현안 등을 원내대표로부터 보고받는 게 일반적이나, 황교안·나경원 체제에서는 이 같은 소통이 활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달 22일 논란이 된 조국 TF 표창장 수여는 나 원내대표가 잠정 결정을 내린 뒤, 황 대표에게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인재 영입은 황 대표가 당 상임특보단장인 이진복 의원을 중심으로 한 원내 측근, 사무총장단과 상의한 뒤 진행됐다.

과거 대표가 인재 영입을 하면 비공개 최고위 등에서 논의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이번에는 최고위원들이 언론 보도 전까지 영입 인사 명단을 몰랐던 것 같다.

사무총장단은 "최고위 의결 사항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비공개 최고위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치열하게 논쟁도 벌였던 과거 지도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측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패스트트랙과 산적한 현안들을 볼 때 당 지도부의 리더십에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류재주 기자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