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기행-관 6

수필가 류준열

[왕가의 계곡]

부활(復活) 염원하며 석회암 산 절벽 뚫어 만든 합세슈트여왕의 장제신전(葬祭神殿) 너머, 계곡에는 거대한 지하세계. 모래로 뒤덮인 산기슭 지하 거미줄처럼 뚫려 있는 수많은 컴컴한 굴, 지상의 왕들 사후 안식하며 환생의 날 기다리는 저승세계. 파라오 사후 만백성 비탄의 눈물 속에 미라로 안식에 든 지하세계, 생사 경계 넘나들며 삶과 예술과 신화 공존하다.

고대 상형문자 숲처럼 빼곡하게 박혀진 역사기록관이라 해야 할지, 조각과 그림 널려있는 미술관이라 해야 할지, 신상 늘어선 신전이라 해야 할지. 높다란 천정, 아래로 끝없이 내려가는 기나긴 굴 양쪽 벽, 굴 벽면 곳곳에 뚫려 있는 여러 개의 측실, 파라오 미라 모신 커다란 주실, 크고 작은 문자와 가지각색 그림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별천지다. 삼사천 년 세월 내내 암흑에 묻혔다 드러낸 정교하고 화려한 실체 탄성의 소리 울려 퍼지다.

정성 깃든 벽면의 상형문자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글 끝없이 이어지며, 파라오에 대한 업적과 칭송 들려주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대열 지어, 공손하게 진귀한 공물 바치는 수많은 신하들, 배 위에서 웃옷 벗은 채 열심히 노 젖는 건장한 남자들, 파라오 향하여 공경의 빛 가득하다.

날카로운 눈동자 번득이며 날렵하게 앉아 있는 검은 호루스(매), 긴 몸 흐늘거리며 기어가는 코브라, 파라오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물방개 한 마리 강물 위 유유히 헤엄쳐 다니다. 오고 가는 세월 잊은 채 벽화 속에서. 울긋불긋한 벽화로 둘러싸인 현실(玄室) 한가운데, 투탕카멘 파라오 떠들썩하게 오고가는 사람들 아랑곳 하지 않고, 반듯하게 누워 숯처럼 검은 얼굴에 하얀 이빨 드러내며, 적멸에 들어 있다. 수천 년 세월 헤아리며 환생의 순간 기다리기나 한 듯, 금방 깨어날 것 같다.

[사막의 하루]

아스라이 펼쳐진 지평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사푼 내려와 두 다리 길게 뻗는다.

끝없이 다가오는 지평선 바라보며, 외길 따라서 아부심벨신전 향한다. 백색, 회색, 노란색, 붉은색 갖가지 색깔로 변하는 광막한 모래평원, 오랜 세월 바람의 흔적 새겨진 부드럽게 굴곡진 사구(砂丘),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처럼 모래평원 곳곳에 박혀 빛나는 야트막한 검은 돌산.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져 사방 분간 안 되는 모래평원에 갇힌다.

사방 둘러봐도 나무와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회백색으로 뒤덮인 사막 한가운데, 커다란 호수 나타나며 하얀 물결 넘실거리다. 달려가 마시고 싶고, 호수에 발 담그며 뙤약볕 열기 식히고 싶다.

넘실거리는 물결 다가가면 사라지고, 사라졌다 어느 순간 다시 보이는, 눈 크게 뜨고 봐도 분명히 호수 같은데, 사막 한가운데 숨바꼭질하듯 호수의 물결 둥둥 떠다니다.

먼 우주로부터 녹색혹성, 황량한 모래세상 가운데 떨어져 내려 푸른 낙원 이루다.

초원과 푸른 숲 찬란하게 빛나는 오아시스는, 외부세상과 담쌓으며 세월의 흐름 아랑곳하지 않고, 무욕의 길 걷는 사람들 세상이다. 모래세상 한 가운데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푸른 숲속에서, 지평선 위 떴다가 지평선 아래로 지는 해와 달 한평생 바라보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웅대한 아부심벨신전 이르러 신전 안 구석구석 걸어도, 수천 년 동안 믿고 추앙한 신의 노래 가슴에 담지 못하고, 무상 하나 손에 달랑 들고 사막 길 돌아오다. 매끈하고 부드럽게 굴곡진 모래평원 끄트머리, 둥실한 태양 검붉게 타며 지평선 위 걸치다. 사방 석양으로 물들 때, 서서히 사그라지는 장엄한 황혼 바라보며, 낯선 이국 끝없이 펼쳐진 사막 한가운데서 묵언에 들다.

어둠의 무거운 장막 천지 뒤덮이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별무리 칠흑 같은 지상으로 내려와, 푸르고 붉은 별 너울너울 춤추며, 세상은 거대한 별세계. 셀 수 없이 무수한 별무리 반짝거리며 신비하고 황홀한 우주쇼 펼치다. 앞쪽에도 별 총총, 뒤쪽에도 별 총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롱초롱한 별빛 달라붙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다. 내 몸 지상에 머물고 있는 지, 하늘을 날고 있는 지, 분별하기 어려운 사막의 밤이다.

류준열 이집트 기행문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