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지소미아는 친밀한 관계의 국가들이 비밀군사정보를 교환하며 공동의 적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맺는 협정으로 상호 교환하는 기밀의 제3국 유출을 방지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일 간에 체결된 지소미아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1월 23일 미국의 요청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표면적으로는 한‧일 간의 협정이나 근본적으로는 한‧미‧일 삼각안보협력관계의 전략적 상징으로서 한‧미‧일이 북한 및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권으로부터 안보를 유지하고 전략적 균형을 지탱한다는 배경 하에서 체결된 것이다. 따라서 한‧일 지소미아협정은 근본적으로 현실적인 한국의 안보와 국방의 문제이며, 동시에 미국의 동아시아지역안보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지난 8월 2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시도를 하자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느닷없이 한‧일 간 지소미아협정을 종료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역사적인 반일감정을 부추겨 사태를 더욱 확산시켰다. 당시 시기적으로 ‘조국사태’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많은 국민들이 이를 덮기 위해 충격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들고 나왔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즉 경제적 갈등에 안보‧국방카드를 내밀었던 것으로 대일본 카운터펀치로는 어울리지 않는 위험한 대응책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조국이 ‘죽창가’를 거론하며 반일감정을 부추긴 것을 보면 하찮은 조국 문제를 덮기 위해 국가의 생존과 관련된 안보‧국방문제를 함부로 도마 위에 올린 것이라는 의혹이 생긴다. 이로 인해 지난 3개월간 대다수 국민들은 참으로 마음 졸이며 힘들어 했다. 다행인 것은 이를 계기로 주사파 정권의 의도가 속속들이 파헤쳐졌고, 국민들은 이 정권의 의도를 확실히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정권이 정말로 현실적인 국가안보와 국방의 문제를 역사적인 반일감정과 연계하여 ‘조국 사태’를 덮으려 시도한 것이라면 구한말 헤이그 밀사사건 직후 개인 영달을 위해 고종을 윽박질러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게 만든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 이완용의 반역적 조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어떤 핑계로도 현실적인 국가안보의 축을 해체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

그러나 불과 3개월 만에 이 정권의 대국민 기만극은 미국의 압박과 국민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났다. 지난 11월 23일부로 한‧일 지소미아협정의 조건부 연장이라는 어정쩡한 말을 달고는 백기를 들었다. 문재인 정권은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언제라도 다시 폐기하겠다는 조건을 걸며 여운을 남기고는 있지만 이는 헛소리로 들린다. 내년 총선까지는 절대 지소미아를 파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의 압박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를 최악으로 끌고 가면 한미동맹이 악화되어 한국의 안보와 국방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국제금융자본이 한국을 떠나가기 시작하면 국내경제가 급작스런 파국으로 내몰릴 수 있어 내년 4월의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불리한 모험이며, 또한 미국의 철두철미한 대북제재가 시행되면 이 정권의 북한바라기 정책이 절단날 것이고 이로 인해 김정은으로부터도 일을 잘못했다고 미움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권으로서는 국민의 지지와 김정은의 인정을 모두 잃는 패착이 되는 것이다. 둘째, 여태까지 좌파 정권이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적은 별로 없었지만 마침 국민의 힘이 발휘될 수 있는 내년 총선을 5개월 정도 앞두고 있어 자칫 정권이 날라 갈 수도 있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국민을 속이더라도 총선에서 좌파의 승리를 이끌어내야 남북연방제를 시도할 현실적인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또 김정은으로부터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이유로도 이 정권에는 악수가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우리로서는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세력을 배경으로 갖고 있어 정말 다행이다. 이런 정황을 국운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나, 이 정권의 지소미아 기만극은 일단 불발로 끝났다. 내년 총선까지는 이 문제가 재발할 가능성은 없겠지만 국민들은 지금부터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만약 총선에서 좌파정권이 득세한다면 그 여파로 지소미아 불씨가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고 할까 그네들이 몇 십 년 주장해온 주한미군철수를 지소미아로써 간단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속수무책이다. 나라가 한번 이념적으로 좌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는 피를 흘려도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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