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2.악연의 시작

1.

지서는 공장 일보다는 운전을 하는 것이 수입도 좋고 일도 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적당한 기회에 운전면허증을 따서 운전사로 일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경찰서에 돈 몇 푼만 쥐어 주면 면허증은 쉽게 딸 수가 있으므로 공장에 있는 화물차를 부지런히 운전하여 실전 경험을 쌓으면 운전사로 일을 할 수 있고, 그러면 몸도 편하고 수입도 많아진다.

노래를 계속 불어야 하는데 잠시 잡생각을 하면서 긴장이 많이 풀어 졌다.

한적한 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깜박 졸면서 차가 차도를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쿵,쿵’하고 부딪히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번쩍 든다.

본능적으로 브레이커 위에 발을 올렸으나 대형화물차는 급제동을 할  경우 차가 크게 흔들려 2차 사고가 난다는 정기사의 조언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급제동을 하지 않고 서서이 제동을 가하여 차를 세웠다.

분명히 무엇인가가 차에 부딪힌 것 같았는데 잠시 졸면서 비몽사몽간에 꿈인지, 아니면 진짜 무엇이 부딪혔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 상체를 기울여 앞 유리에 머리를 바짝 갖다 대고 바깥 동정을 살핀다.

라이트 불빛 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물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상당히 큰 충격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지서는 도로상황을 살피러 차에서 내리면서 트럭의 앞 부분을 살펴본다.차 앞 부분은 분명히 무엇인가가 부딪혀 약간 구부러 진 것 같지만 어두운 밤이었고 차체가 두꺼워 그런지 육안으로는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늘상 보아오던 앞 모습에 분명히 어떠한 변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갑자기 큰 두려움이 밀려 오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적한 곳이라고 하지만 부산시내 길이고, 부산시내에 산짐승이 나타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머리끝이 쭈볏거리고 정신이 몽롱해 진다. 

부근 도로를 살펴 보아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살펴 보아야 한다.

겨우 눈을 들어 차도와 차도 부근의 노견 쪽을 살펴 본다.

특별한게 보이지 않는다.

차 뒤 쪽으로 가면서 뒤편 도로의 상황을 살핀다.

한참 뒤 차도 쪽에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가물거리는 시야에 들어 온다.

무언가 수상한 물체가 길바닥에 팽개쳐 있다.

심장이 갑자기 요동을 친다. 시커먼 물체는 대번에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다가가 보아야 하는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다가갈 수가 없다.

가서 확인하여 한다는 이성과 빨리 현장을 빠져 나가 도망을 쳐야 한다는 본능이 싸움을 하는 중에 흐이적 걸음을 떼어 시커먼 물체로 다가간다.

갑자기 사형장에 끌려 가는 자신의 모습이 떠 오른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지서를 잡아 먹으려는 사형장의 큰 올가미 줄이 뻘건 혀를 낼름이면서 “어서 와서 너의 목을 여기에 넣으렴” 하고 속삭이고 있다.

사람이다, 어깨가 움찔움찔하면서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소리인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사람을 흔들어 보아야 하지만 도무지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다.

머리에서 나오는 피는 기울어진 도로를 따라 벌써 긴 줄을 만들면서 흐르고 있다.

컴컴한 속에서도 아주 맑고 선명한 붉은색의 피였다.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지서가 운행하던 차선의 노견 쪽에 또 무슨 물체가 쓰러져 있는 것 같다.

차마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여학생과 그 동생쯤으로 보이는 상고머리를 한 남자 아이가 엎어져 있다.

아마도 이 세 사람이 한 가족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딸, 아들... 쓰러진 사람이 더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고역이다.

상고머리를 한 아이는 어깨가 완전히 젖혀져 꺾여 진 채 머리를 길바닥에 대고 누워 얼굴을 하늘을 향하고 가는 신음소리만 낼뿐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고, 그의 뒷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주변에 흥건하다.

그 아이의 곁에 누워 있는 여학생은 눈도 뜨지 못한 채 들릴 듯 말듯 한 가는 목소리로 “살려 주세요” 하는 말을 하지만 역시 몸은 움직이지 못한다.

아직 모두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빨리 구호조치를 하면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차라도 있으면 불러 세워 구조를 도와 달라고 할 건데 이 길은 부산의 외곽 도로로서 낮에도 차가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인 관계로 지나가는 차도 없다.

갑자기 닥친 처참한 결과 앞에서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한참을 멍하게 서 있던 지서는 자신의 힘으로는 이 어려운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도망을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일단 도주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다른 목격자가 나타나기 전에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발을 떼려 해도 후들거리는 다리는 말을 듣지 않는다. 신속하게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마음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의 묘한 엇박자는 지서로 하여금 갈짓자의 걸음을 걷게 한다.

그 갈짓자의 걸음걸이는 구호를 해야한다는 양심과 도망을 가야 한다는 악마의 마음이 교차하는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악마는 언제나 옆에 있고 언제나 악마가 승리한다.

지서는 결국 악마가 인도하는 길을 따르기로 한다.

지서는 차에 올라 전조등을 끄고 미등까지 끈 채 살그머니 현장을 빠져 나가려고 하였지만 미등까지 끄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미등을 다시 켜고 전진기어를 넣는다. 

고물차의 악악대는 엔진소리에 지서의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더 해져 부산바닥이 들썩일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사고를 내고 급히 차를 세울 때 지서는 당황한 나머지 전조등을 끄지도 않은 상태로 차에서 내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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