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말하는 성인(聖人)은 종교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다. 지도자는 백성보다 위에 오르고자 할 때 군림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하인이 되어 겸허하게 섬기겠다고 큰소리 쳐 놓고, 막상 정권을 잡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하무인으로 변한 이 시대의 통치자들은 물에서 배워야 한다. 강과 바다가 골짜기에서 왕 노릇할 수 있는 까닭은 스스로를 낮춘 겸손함의 결과라는 것을, 낮추면서 다투지 않고 주변을 이롭게 한다. 그것은 하늘과 땅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민과의 대화라는 대통령 팬클럽 미팅회를 생중계로 보면서 물의 흐름과 같은 국민의 열망을 아전인수 격으로 역행하고 있음을 보고 물의 순리를 생각해 본다.

주장한 노자의 사상은 물의 비유에 잘 반영되어 있다. 물은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 법은 없다. ‘물이 거슬러 올라 간다’는 뜻을 지닌 ‘역류(逆流)’조차도 상류가 하류보다 낮기 때문에 발생한다. 물길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순리(順理)다. 동양인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기보다는 받아들이면서 살아왔다. 물을 억지로 위로 분출시킨 분수(噴水)는 동양문화에는 없는 서양 문화다.

“최고의 선(上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아주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최고의 선에 있는 사람은 머무는 곳으로는 땅을 최상으로 여기고, 마음가짐은 고요한 연못을 최상으로 여기며, 선한 사람과 더불어 하며, 말에서는 믿음을 최상으로 여기고, 바르게 함에 있어서는 다스리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며, 일에서는 능력을 최상으로 여기고, 행동에서는 시의적절함을 최상으로 여긴다.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따라서 허물이 없게 된다”

물은 흐른다. 산이나 바위가 앞을 막으면 물은 돌아서 간다. 낭떠러지를 만나면 떨어지고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바닥까지 채운 다음 길을 떠난다. 젖은 땅이든 마른 땅이든 가리지 않고 나아간다. 오염된 하수구든 비옥한 논이든 따지지 않고 적신다. 물이 지나간 자리는 아무리 황폐한 폐허라도 생명이 움튼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지저분한 곳에 있는 것을 불평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있으면서도 왜 이렇게 밑바닥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툴툴거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린다. 그 모습이 꼭 도(道)를 닮았다. 물이 곧 도이고 도가 곧 물이다.

지금 국민의 물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 일명 태극기와 촛불집회로 양분 되어 있다. 국민의 일부는 대통령으로 인정하여 팬 미팅을 하고, 또 국민의 일부는 평가절하 야유의 집회를 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을 살리는 도와 같은 물 흐름의 정치철학을 펼치는 국민 모두의 통치 지도자가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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