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2.악연의 시작

2.

사고가 난 다음 날 전국 신문의 사회면에 큰 비중을 차지 하면서 사고 사실이 보도되었고, 특히 부산지역의 신문이나 라디오에서 거의 특종과도 같은 비중으로 취급되어 보도 되었다. 

신문에서는 유가족이라면서 젊은 여자가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적나라한 사진으로 보도되었고, 이 사진은 전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이 비극적인 뉴스를 접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분노하면서 도망간 뺑소니 범을 잡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었으나 당시만 해도 신문을 안 보는 집이 대부분이었고, 라디오도 없는 집이 더 많았으므로 사고 사실이 폭넓게 알려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한다.

더군다나 뺑소니 사건은 주변의 목격자들이 사고 사실을 제보해 주어야 하지만 사고 사실이 알려지고 여론화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면 목격자의 자발적인 신고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목격자도 없는 이런 외진 길에서의 뺑소니 사건은 결국 해운대 백사장에 감추어 놓은 바늘 찾기보다 더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므로 사실 지서가 뺑소니를 마음먹는 순간 범인은 증발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지서가 운전한 차량은 대형화물 차량으로서 차체의 외관이 워낙 튼튼하고, 범퍼도 아주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웬만한 속도로 사람을 충격한다고 하여 차체에는 흔적이 잘 남지 않는다.

지서는 대형 사고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현장에 차량의 파손으로 인하여 도로상에 흩어지는 유류품을 전혀 남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사고 당시 졸다가 피해자들을 충격하였기 때문에 급제동을 하면서 남기는 스키드 마크도 뚜렷하게 남지 않아 차종을 유추할 수도 없었다.

승용차나 소형차에 의한 보행자 충격 사건의 경우 범퍼가 약하여 범퍼가 떨어져 나가거나 충격으로 앞 유리가 파손되고, 특히 백미러등이 떨어져 나가는 경우가 많아 차종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경우 사고 후 광범위하게 정비공장을 탐문하면 사고 차량이 정비공장을 찾아 수리하는 과정에서 범인을 잡을 수 있지만 대형 트럭에 의한 보행자사고는 현장에 단서가 될 만한 어떠한 것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수사가 난감해 진다.

경찰에서는 유류품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가지고 역으로 유추하여 대형차량에 의한 사고라고 짐작하는 외에 달리 조사할 방법이 없다.

수사관의 오감에 의한 수사 외에 과학적인 수사방법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따라서 수사가 답보 상태에 빠진 것은 당연하다.

3.

지서가 근무하던 공장의 사장인 조사장은 사고 다음 날 공장 직공으로부터 공장 부근에서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하는 대형 교통사고가 났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그 사고 사실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공장이 있는 부전동에서 단순한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정도로 생각하였으나 점심 때 인근의 다른 신발공장 사장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잡담을 나누던 중에 사고 장소가 자신의 공장에서 채 5분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로서 자신의 신발공장에서 납품처로 가는 길목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사고 시간과 지서가 운행한 차량이 공장에 돌아온 시간을 감안 할 때 혹시 지서가 사고를 낸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의심이 들었다.

사장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공장으로 돌아와 행여 하는 마음으로 어제 지서가 운전하였던 차량을 면밀히 살펴보았는데, 그 결과 차 앞 범퍼 부분이 약간 우묵하게 들어가 있고, 그 부분에 무슨 이물질이 묻었는지 집중적으로 닦아낸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찾아 낼 수 있었다.

범퍼의 다른 부분에는 먼지와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 찌든 때가 시커멓게 남아 있으나 충격 부분으로 의심되는 곳에는 분명히 닦아 낸 흔적이 반들거리면서 남아 있다.

그제서야 사장은 몸이 아프다고 출근도 하지 않던 지서가 물품을 배달한 다음 날 아침 갑자기 퇴사하겠다고 하였고, 퇴사를 만류하였으나 극구 퇴사를 고집하므로 결국 퇴사를 허락하면서 오후에 돈이 들어오면 그동안의 임금을 받아 가라고 하였지만 다음에 와서 받겠다고 하면서 도망가듯 허겁지겁 가 버린 사실은 그 의심을 확신으로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사장은 일손이 달리는데도 불구하고 도망치듯 가버린 지서가 미워 경찰에 신고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보험도 제대로 없는 상태에서 3명이나 사망한 사고라면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어도 모자랄 판이었다. 또한 운전면허증도 없는 지서에게 운전을 지시한 사장 자신도 형사적인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미치자 사고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하기로 하였고, 오히려 차를 건물 뒷 부분으로 옮기게 한 후 남이 볼까 봐 직접 물을 뿌려 전면 부분을 세차하여 행여 남아 있을 증거를 없애기 까지 하였다.

결국 사고 사실은 사장의 묵인 속에 사장과 지서만 아는 잊혀진 사건이 되었고, 그 사고로 숨진 사람들이나 그 유가족은 어디에도 하소연 할 데 없는 그야말로 억울한 사건이 되었다.

4

경찰에서는 사건 초반 전국적인 관심 사건이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사본부까지 차리게 되었고, 더욱이 부산시경 국장이 직접 해당 경찰서까지 찾아가 범인을 반드시 체포하라고 특별지시까지 한 마당이었으므로 초기에는 의욕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에, 그것도 한적하고 어두운 시 외곽도로에서 발생한 사고였고, 현장에 유류품은 물론이고 목격자도 없는 최악의 뺑소니 사건이었으므로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조사 방법이라고는 경찰관들을 대대적으로 풀어 부산 시내의 모든 정비공장 들을 더듬고 다니면서 수리 하러 들어 온 차량 중에 의심스러운 차량이 보이면 신고해 달라고 부탁하거나 인근 공장이나 주택가를 돌면서 목격자를 탐문하는 정도였으므로 수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의심이 갈 만한 용의차량 하나 확보하지 못하는 답보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사고가 난 때가 연말 연시였고, 연말 연시는 일년 중 사건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때이므로 교통사고에 너무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없어 그나마 차려진 수사본부에서 하나씩 둘 씩 인력을 빼가다 보니 결국 한 달도 되지 않아 이 사건 조사는 자연 뒷전으로 밀렸고, 그나마 형식적으로 유지해 오던 수사본부도 채 두 달이 안 되어 사실상 해체되어 이 사건은 캐비넷 속에서 잠자는 사건으로 변해 버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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