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이 살아가는 진풍경

엽기 조선풍속사-Ⅰ

태양과 달 지구가 일직선으로 놓이게 되면 달이 태양을 가리는 일식이 일어나는데, 옛사람들은 이 당연한 자연현상이 당연하지 않았든 모양이다. 서양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일식(日蝕)을 두고 갑론을박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일식을 재앙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들이다.

조선의 경우에도 일식은 천변(天變)이라 하여 전시체제로 대응하였다. 태양이 곧 왕을 의미하던 조선시대에 해가 사라지는 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이며, 왕이 다스리던 영영이 침범을 당했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나 왕을 상징하는 태양이 사라져버렸으니 큰일일 만도 하다. 왕은 이를 바로잡아야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에 일식현상과 맞서 전쟁을 치른 것이다. 그래서 소복을 입고 조정의 관료신하와 백성을 동원하여 북과 징을 치면서 태양을 되살리는 의식을 치렀다. 하지만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쇼였다.

이미 11세기만 해도 인류는 일식이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알고 있었으며 치밀한 계산으로 예측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일식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관상감(觀象監)의 일월식술자(日月式述者)라는 직책이다. 일월식술자는 천문을 관찰하고 일식과 월식이 나타나는 날을 계산해서 왕에게 보고했다. 그렇지만 일식과 월식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고, 그에 대해 상징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왕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다잡는 것이었다.

출처:엽기조선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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