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지난 12월 4일 문재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 교수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가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만약 북한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중국이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고 그 상태로 북한과 협상을 하는 방안은 어떻겠느냐"고 중국 측 참석자에게 돌발 질문을 던졌다. 한‧미 동맹을 한‧중 동맹으로 대체하고 싶다는 말을 에둘러 표명한 대목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권 들어 주변 4강 외교는 모두 실패로 나타나고 있다. 흔히들 외교 프레임으로 명분과 실리를 내세우고 있으나 민족단위로 구성된 동아시아에서는 힘과 꾀의 작용이 명분보다 더 중요하다. 일본을 미워한다고 우리에게 도움 될 게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을 미워한다고 우리에게 도움 될 것 또한 없다. 지소미아 사태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는 민족감정을 앞세워 반일에 집중하였으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지소미아 폐기를 연기하였다. 힘이 중요한 것이다. 힘이 없으면 꾀라도 있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다. 오로지 반일이라는 명분과 반일 뒤에 숨어있는 반미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가 가장 미워해야할 나라는 중국이며, 지금 우리의 안보를 흔드는 것은 북한과 중국을 휩싸고 있는 사회주의체제의 북‧중동맹이다. 중국은 이웃국가로서 역사적으로 우리나라를 가장 많이 침략하고 괴롭힌 나라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과거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중국을 미워하면서도 싸우고 달래면서 안고 왔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중국이 사회주의국가임을 알면서도 시장의 규모와 향후 잠재력에 비중을 두고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과 중국이 공산사회주의체제로 한 통속의 동맹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나라의 힘이 약하면 꾀라도 있어야 안보를 지탱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으로 풀어야 한다. 감정적으로 미워하기보다는 국력을 발전시켜 일본을 능가하는 때가 일본을 극복하는 순간인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는 국가의 안전보장과 경제를 지탱하는 지렛대이다. 미국은 1‧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를 주도하여 세계질서를 이끌어가는 초강대국이다.

그런데도 이 정권이 일본과 미국을 감정적으로 미워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경제발전에 위험한 시도로 보인다. 특히 지금은 미‧중 패권전쟁이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여서 더욱 그러하다. 통일외교안보특보 문정인 교수가 제안한대로 만약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한‧미동맹이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며 한국의 국력은 군사‧경제‧외교적으로 형편없이 추락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한‧미동맹과 달리 한‧중동맹은 체제가 다른 국가와의 관계여서 게임의 룰이 전혀 다르게 된다. 사드배치 논란이후 중국의 행태는 청나라가 조선을 속국으로 대한 것과 동일한 태도였다. 한국이 영토욕심이 강한 중국의 영향권 안에 자진하여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생길 것인가? 중국의 주도 하에 남북한이 평화문제를 협상하여 쉽게 공산화 통일이 될 수 있다.

한‧중 동맹을 가상하는 것은 자살 행위인 셈이다, 중국의 동북공정도 고구려 주민을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 보는 침탈 의지가 담긴 프로젝트였다. 중국인의 시간개념은 우리보다 길다. 중국이 한반도의 북부지역을 긴 시간을 두고 중국영토로 가져가겠다는 역사적 사전 포석을 해놓고 있음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국제 정글사회에서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선은 국가에 힘이 있어야 한다. 국가의 파워는 군사력, 경제력 등으로 표현되는 하드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힘이 없으면 꾀라도 있어야 한다. 거란의 1차 침입 시, 고려의 외교장수 서희는 거란과 송의 관계를 이용하여 전략적인 담판으로 소손녕이 이끄는 80만 거란대군을 물리고 여진족이 차지하던 청천강 이북의 강동 6주 영토(평북 지역)를 되찾기까지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미군이 휴전협상을 완료하기 위해 포로교환을 시도하는 와중에 반공포로석방이라는 극약처방을 하면서까지 미국을 붙잡고 늘어져 결국 한‧미동맹을 이끌어냈다. 이 바탕위에서 오늘날 우리는 안보를 유지하며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 군사력을 훼손시키고, 경제력도 최하의 상태에서 못 벗어나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주체사상으로 뭉친 김일성민족주의로 우리와는 민족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민족주의에 도취되어 북한을 바라보고, 시장이 넓은 것만 보고 중국을 쫒아가며 국제사회의 주변 동향을 둘러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현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도층의 사고가 망상주의에 빠져있으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