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지난 2018년 6월 13일 실시됐던 전국 동시지방선거는 평화 쇼가 가장 잘 통했던 사례였다. 문재인 정권이 선거 바로 하루 전날인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제1차 미‧북 정상회담을 주선했기 때문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 쇼의 주연으로 등장하여 김정은과 악수하자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전국 지자체 단체장의 대부분을 여당에서 싹쓸이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평화 쇼를 준비 중인 것 같다. 선거에서 각종 정치 쇼가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평화 쇼를 위해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만드는 것은 곤란하다.

그간 문재인 정권이 연출하는 평화 쇼의 소재는 미국과 북한이었다. 초강대국 미국을 북핵 및 한반도 문제에 직접 개입시켜 향후 남북한 간 분쟁을 없애고 평화를 지속할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국민들에 심어주면서, 한편으로 이를 빌미로 ‘김정은 비위맞추기’에 주력하고, 미국을 앞세워 대북 경제지원 방식으로 접근하면 향후 별다른 저항 없이 ‘대북퍼주기’가 가능하다는 다목적 계산이 가능하다. 이런 식의 ‘가공된 평화’는 복종적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확실한 안보의 뒷받침 없이 트럼프의 얼굴을 간판으로 내걸고, ‘김정은 비위맞추기’와 대북 경제지원 카드 등으로 얼기설기 얽어서 만든 평화 쇼는 항상 불안정한 상태의 평화이다. 북한이 만족하면 아무 일없이 평화가 유지되고, 북한이 어깃장을 놓으면 무 대응하며 상황이 가라앉기만 기다리는 ‘거짓 평화’였다. 상황이 변화해도 바뀌지 않고 튼튼한 안보에 기반을 둔 항구적인 평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평화였다.

제 2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은 미국이 대선을 염두에 두고 추진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관계의 개선과 발전을 주요 업적으로 삼으려 했으며, 북한은 완전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미국의 코를 끼어놓으려 했고, 문 정권은 이 틈에 얼렁뚱땅 남북한 간 휴전협정을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협정으로 변경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은 유엔사령부가 가진 휴전선 관할권을 없애는 선언이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북한군이 휴전선을 자유롭게 통과해 남침해도 관여하기 어려우며, 미국도 참여 명분이 사라진다. 바로 북한과 중국이 원하는 바대로 진행될 뻔했다. 그러나 제 2차 하노이 미‧북정상회담은 1차 싱가포르 회담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트럼프의 인식변화로 인해 다행히도 결렬되었다.

내년 4,15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결전을 각오하고 있다. 군사, 외교,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참담한 성적표를 보이는 문재인 정권으로서는 선거 승리를 위해 가장 잘 하는 대북평화 쇼를 또다시 연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제 더 이상 활용하기 쉽지 않으므로 대상을 바꾸어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을 불러다놓고 평화 쇼를 펼친다면 충분히 선거 분위기를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순 방한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초청 의사를 정식으로 전달하였다. 지금쯤은 한‧중 양측의 물밑 외교가 긴밀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방문 시기는 내년 봄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선거 가까운 시기가 될 것이다. 문 정권으로서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시진핑 방한을 통해 평화 쇼를 연출할 것이다. 일단 선거를 눈앞에 두면 선거 승리가 최고의 선이며,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이 발동하면 국민과 국가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시진핑 주석이 방한할 때 개최될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한‧중 관계발전 문제 및 양국 간 경제협력 문제, 사드 배치철회 여부 등 루틴한 협상 의제 외에, 별도로 동북아 정세, 북핵 및 한반도 정세 관련 의제가 상당히 주목받을 것이다. 만약 시진핑 주석이 판문점 방문 및 남‧북‧중 정상 접촉을 연출한다면 완벽한 위장 평화 쇼가 될 수 있다. 또한 시진핑이 종전선언 등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과 관련한 중국의 역할에 대해 진일보한 의사를 표명한다면 이 역시 평화 쇼가 될 수 있다. 그 외에 중국을 활용하여 유엔의 대북제재에 틈을 만들고 한‧중 기업이 공동 보조하는 맞춤형 대북지원 방안을 강구하거나, 중국을 통한 미‧북 정상회담 중재 요청, 남‧북‧미‧중 간 4자회담 주선 등의 평화를 가장한 의제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의제에 대해 지금부터 중국과 물밑접촉을 하면서 한편으로 미국 측을 끌어들이면, 대북성과에 목매고 있는 트럼프가 또 다시 달려들어 유사평화의 그림이 얼마든지 그려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전체주의 정권은 국제평화의 토대를 위협해 왔다. 중국과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에 기대어 평화 쇼를 연출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국의 안보에 상당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야당은 아마도 내년 4월 초순을 전후하여 진행될 시진핑 주석의 방한과 관련하여 정부‧여당이 국가안보를 담보하여 평화 쇼에만 집착하지 않도록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토론장을 마련하여 발생 가능한 안보위해 요소를 미리 점검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미리미리 지적해 나가는 방안이라도 세워야 한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