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류준열

지구기행 관 13

발트 해에 발 담그고 세상사 잊기나 한 듯 백색 궁궐의 고아한 자태, 숲으로 둘러싸인 넓은 정원, 창공 향해 세차게 뿜어 올리는 분수

커다란 연못 가운데 우뚝 솟은 분수대 위 다정하게 마주 보고 있는 전기기묘묘한 전라의 황금 남녀 상, 뜨거운 열기 식히기라도 하는 듯 솟구치는 물줄기 맞으며 싱그럽게 빛나는 육체 꿈틀거리고 있다.

이리 가도 분수, 저리 가도 분수, 궁궐 정원은 숲과 분수의 세상이다.

창공 향해 세차게 타고 오르다 번번이 부셔져 내리고, 다시 힘껏 솟구쳐 오르지만 이내 우수수 떨어지다. 이룰 수 없는 부질없는 꿈인 줄 알면서도 허공에 오르고 싶은 끈질긴 몸부림이다.

옳은 소리 못하고 아부만 하며 사리사욕 챙기는 신하 곁에서, 배고픔과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백성의 소리 듣지 않고, 독단과 독선의 잔혹한 정치 펼친 황제. 백성의 원성 하늘을 찌르고 붉은 혁명 타오르는 혼란의 소용돌이, 끝내 최고의 권좌에서 쫓겨나,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가족마저 피살당하는 비운의 황제, 세상 순리 거스르고 민심의 소리 듣지 않은 자업자득의 비극이다.

러일 전쟁과 일제 식민지, 1차세계대전과 붉은 혁명, 레닌과 스탈린, 김일성과 이승만, 6.25동란과 분단국가, 자국은 물론 인접국마저 구렁텅이 역사로 빠지게 한 제정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떠올리며 일어나는 역사적 단편이다.

끊임없이 올랐다가 떨어지는 궁전 분수, 지난 100년의 피비린내 진동하며 고통과 상처로 얼룩진 세상사 알고 있기는 할까.

*분수 궁전(페테르고프) : 표트르대제에 의해 1714년 착공하여 150년 후 완공된 궁전. 제정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1000 헥타르 부지 위에 20여개의 궁전과 140개의 화려한 분수, 7개의 아름다운 공원으로 이루어짐

*니콜라이 2세 : 러시아 마지막 황제, 로마노프 왕조의 14번째 군주로 1917년 혁명으로 퇴위했으며, 1918년 총살당함

*북유럽 6개국 러시아,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에스토니아 기행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