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서원’ 9곳 순차 탐방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書院 탐방-Ⅰ

사적 제55호 소수서원 전경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재)

 

소수서원(紹修書院)은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1871년(고종 8)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에도 훼철하지 않고 존속한 서원 47곳 중의 하나로, 1963년 사적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소수서원(紹修書院)은 1541년(중종 36) 7월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1542년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는 사당을 설립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 이듬해인 1543년 8월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같은 해에 설립한 데서 비롯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주세붕이 서원 이름을 '백운동'으로 한 것은 소수서원의 자리가 중국 송(宋)나라 때 주희(朱熹)가 재흥시킨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던 "여산(廬山)에 못지않게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이며,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서원을 세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백록동'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백운동서원이 들어선 곳은 숙수사(宿水寺) 옛터로 안향이 어린 시절 노닐며 공부를 하던 곳이다. 현재 서원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백운동서원이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48년 10월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노력으로 1549년 1월에 경상도관찰사 심통원(沈通源)을 통하여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賜額)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로 결정하고 1550년(명종 5) 2월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하여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사당에는 안축과 그의 아우인 안보가 1544년(중종)에, 주세붕이 1633년(인조)에 추가로 배향되었다. 안축은 안향의 삼종손(三從孫)이다. 그가 지은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은 이름난 경기체가(景幾體歌)로 국문학사상 귀중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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