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연재소설

3.함정

3.

태완이는 이튿날 할매가 사준 일제 색연필 한 자루를 책가방 속에 넣어 학교에 가지고 갔다. 물론 신자에게 주기 위해서다. 신자네 집이나 태완이 집은 모두 농사를 짓기 때문에 사는 게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태완이는 할매가 비싼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가끔 사 주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언제나 부러워한다.

태완이는 할매가 사준 학용품 중에 빨간색과 파란색, 노란색이 한꺼번에 나오는 색연필이 너무 신기하여 아끼고 있던 것이었는데 이 아끼던 물건을 신자에게 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줄 것인가.

태완이는 색연필을 신자에게 주려고 등교하는 길에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학교에 도착해 보니 신자 옆에는 다른 아이들이 있어 아무도 모르게 살짝 줄 기회가 잘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태완이는 집에 갈 때 어제 신자가 한 것처럼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신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집에 같이 가면서 전해 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신자는 어느 틈에 나가 버렸는지 운동장에 아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도 신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가 없어 혼자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신자네 집은 마을 입구에 있기 때문에 신자 집을 거쳐 태완이 집으로 가게 되는데 신자 집 앞을 지나오면서 가만이 귀를 기울여 보니 신자가 집에서 혼이 나는지 신자 엄마의 째지는 목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려 온다.

동네에서 아마 신자 엄마의 목소리가 제일 클거다. 동네 아이들은 신자엄마를 보고 목소리가 기차 화통같다고 하여 ‘화통아줌마’라고 부른다.

신자 엄마가 ‘화통아줌마’로 불린다는 것은 본인만 모르고 다 아는 사실이다.

물론 신자도 알고 있지만 제 엄마한테 그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신자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모내기를 하거나 김장을 담들 때는 품앗이를 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동네 아줌마들은 신자 엄마가 너무 도도하여 자기도 촌년이면서 촌여자들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태완이가 보기에도 신자 엄마는 너무 무섭다.

심부름으로 뭘 갖다 주려고 화통아줌마를 찾아도 아줌마는 언제나 눈을 내리깔고 착 낮춘 목소리로“ 거기 놔두고 가라” 는 짧은 말로 끝이다.

절대로 “태완이 왔나” 하면서 이름을 불러 주는 경우도 없고 웃어 주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

얼굴 표정이 바뀌지 않는다고 하여 어른들이 ‘안면 경직증 환자’라고도 부른다.

간간이 대문 밖으로 들려 오는 소리가 있다면 이 소리는 십중팔구 신자엄마의 째지는 목소리다.

신자 엄마는 신자에게도 절대 웃음을 보이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신자의 언니인 신숙이에게는 잘 웃어 준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신자가 속이 좋아 제 엄마의 히스테리를 잘 견뎌 내지만 어린 신자의 속이 다 썩을 거라는 말들을 한다.

신자 엄마의 고함소리가 들리자 태완이는 모른척하고 신자네 집에 들어가서 색연필을 전해 줄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다.

공연히 지금 분위기에 신자를 만날 경우 불똥이 태완이에게도 튈 수 있지만 그것 보다도 신자의 난처해하는 모습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태완이는 이튿날 학교에서 색연필을 신자에게 주기로 하였다.

이튿날, 학교에서도 색연필을 전해 줄 기회가 저히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어제처럼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에 주려고 하였지만 어제 처럼 신자가 먼저 나가 버리는 경우가 생기면 안되므로 일찌감치 교문 밖으로 나가 신자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태완이는 선생님이 집으로 가라는 말이 떨어 지기가 무섭게 교문 박으로 달려 나가 교문이 잘 보이는 문방구점 모퉁이에 서서 신자를 기다리는데 신자는 태완이의 애타는 마음도 모르는지 다른 여자아이들하고 무리 지어서 집으로 가는 바람에 또 전달해 줄 수가 없었다.

태완이는 색연필을 가방 안에 넣고 1주일을 기다렸으나 전달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으므로 직접 전해 주는 것은 포기하고 교실 안에 아무도 없을 때 신자의 책가방 안에 살짝 넣어 주는 것으로 방법을 변경하기로 하였다.

태완이는 수업시간에 신자가 볼 수 있도록 색연필을 몇 번 흔들어 보이고는 체육시간에 맞추어 아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갈 때 교실에서 제일 늦게 나오면서 신자의 책가방 안에 색연필을 슬쩍 넣어 놓았다.

그런데 체육 시간을 마치고 신자가 교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태완이도 뒤따라 교실로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는데 신자는 책가방을 열어 볼 생각도 하지 않다가 다음 국어 시간이 되어 국어책과 공책을 꺼내다가 신자는 그제서야 색연필을 발견한 것 같다.

신자는 예쁜 색연필을 꺼내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돌려 태완이를 바라보면서 색연필을 흔드는 모양이 ‘네가 넣어 놓았냐’고 묻는 것 같다.

그래서 태완이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아래위로 몇 번 흔들어 대답을 해 주었는데 그 다음 상황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신자가 갑자기 색연필을 태완이에게 던져 버린 것이다.

태완이는 응겁결에 색연필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색연필은 교실바닥을 데구르르 굴러 태완이의 자리를 비켜 지나갔고, 태완이는 퍼뜩 일어나 책상사이의 복도에 떨어진 색연필을 줍는다.

앞에서 칠판에 학습 내용을 열심히 적던 선생님이 돌발적인 소리에 잠시 쓰던 걸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으나 이내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다시 칠판에 적는 걸 계속한다.

신자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치면 동그랗게 입을 모아 “왜”하고 말도 하지 않은 채 물어보려고 하였으나 신자는 아예 고개를 돌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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