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원 탐방-Ⅵ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한국의 서원’ 9곳 순차 탐방

도동서원 전경.

 

조선 초기의 명유(名儒)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을 배향하였다. 1568년 지방유림에서 비슬산 동쪽 기슭에 세워 쌍계서원(雙溪書院)이라고 하였고, 1573년에 같은 이름으로 사액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에 사림들이 지금의 자리에 사우를 중건하여 보로동서원(甫勞洞書院)이라고 하였다. 1607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되었다. 2007년 10월 10일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었다. 2019년 7월 전국 8개 서원과 함께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훼철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 병산서원·도산서원·옥산서원·소수서원과 더불어 5대 서원으로 꼽힌다. 서원 건축이 가져야 할 모든 건축적 규범을 완벽히 갖추고 있는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평가된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는데, '도동(道東)'으로 사액한 것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東來]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동서원이 건립된 현풍 땅과 김굉필이 관계를 맺게 된 연유는 증조부 김중곤이 현풍 곽씨 가문에 장가를 들어 현풍에 정착하면서부터이다.

성장기를 현풍면 대니산 남쪽 솔례촌에서 보낸 한훤당은 호탕하게 놀기를 좋아하고 거리낌이 없었는데, 18세 때 합천군 야로에 있는 집안에 장가들면서 처가 근처 계곡에 '한훤당'이라는 조그마한 서재를 짓고 학문에 열중하게 된다. 이때 인근에 위치한 함양에 군수로 있던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수제자가 되어 『소학(小學)』을 배우면서 정몽주­김종직­김굉필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맥을 잇게 된다.

김굉필은 2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하다가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일파로 지목되어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다. 후에 전라도 순천에 이배되었다가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사약을 받았으나 중종반정(中宗反正) 후에 명예를 회복하였다.

도동서원의 전체적인 건축 구성과 배치 형식은 우리나라 서원건축 중 가장 규범적이고 전형적이며, 건축적 완성도와 공간 구성도 우수하다. 문루인 수월루는 공부하던 유생들이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풀던 곳으로, 1888년(고종 25)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73년에 중건되었다. 물 위에 비친 달빛으로 글을 읽는다는 뜻을 가진 수월루의 건축적 품격은 서원 내 다른 건물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난간을 두른 2층 누마루에 오르면 넘실거리는 푸른 강물과 서원 주변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서원 정문인 환주문은 맞담에 세운 규모가 작은 문으로서 사모지붕이다. '환주(喚主)'는 '내 심성의 주(主)가 되는 근본을 찾아 부른다'는 뜻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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