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의 풍속-Ⅺ

-수렴청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왕비-

조선 명종 때 수렴청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조선 불교의 구세주로 불리는 문정왕후는 조선 중종의 계비(繼妃)(1501~1565)로 성은 윤(尹)씨 이다. 중종 12년(1517)에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아들 명종이 12세 때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실시하여 권력을 잡았으며 동생 윤원형과 함께 윤임 일파를 몰아내는 을사사화를 일으켰다. 무엇보다도 승려 보우와 함께 국시인 숭유배불을 무시하고 불교중흥을 도모했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건국 이후 끊임없이 불교 억업 정책을 펼쳐왔다. 사찰소유 토지와 노비의 국고귀속과 도첩제(度牒制:중의 신분증 발급제도) 폐지하여 중이 될 수 없게 했을 뿐만 아니라, 11개 종단을 세종 때에는 선교(禪敎)양종으로 축소했으며 성종은 훈구파의 견제장치로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파를 전면에 내 세워 선교양종마저 폐지시켰다. 성종 사후 인종과 명종시대 정희왕후의 등장으로 불교정책을 재 수정함에 따라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의 수렴청정은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가 처음이었고 그 다음이 바로 문정왕후이다. 소윤이라 하는 동생 윤원형과 그의 첩 정난정 등의 도움을 받으며 세자와 그를 보호하는 대윤이라 하는 윤임 세력과 맞섰다. 두 윤 씨의 대립으로 대윤을 몰아 낸 사건이 을사사화이다.

‘숭유억불’이 국시인 조선이었지만 왕실에서 조차 알게 모르게 특히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 중에는 독실한 불교신자가 많았으며 불교를 통해 기복하는 예가 많았다.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천년을 넘게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했던 불교를 조선에 들어와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를 아무리 핍박한다 하여도 뿌리 깊은 신앙심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백척간두의 위태로운 정치상황을 헤쳐 나온 문정왕후 또한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이때의 불교 부흥책으로 승려 서산대산로 알려진 휴정과 유정이 발탁되었으며, 이들은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의 총수가 되어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며 서울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유(儒)ㆍ불(佛)ㆍ도(道) 3교 통합설의 기반을 마련하고 교종(敎宗)을 선종(禪宗)에 포섭하는 등 유교사회에서 불교가 구국의 역할을 하는 데는 문정왕후의 공로가 있었다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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