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3.함정

5

“읍내는 와가노?”

“읍내 만화책방에 새 만화가 많이 들어 왔다 카더라.”

갈 때는 경운기를 타고 가지만 올 때는 경운기에 짐을 실어 앉을 자리가 없으므로 버스를 타고 들어 와야 한다.

영길이 외삼촌은 각자 집에 가서 부모님의 승낙을 받아 오라고 하여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가서 승낙을 받았다.

태완이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들 일을 가고 없으므로 승낙을 받지 못하였고, 대신 할매에게 읍내에서 놀다 오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초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제법 날씨가 쌀쌀하였지만 아랑곳 없는 아이들은 들뜬 마음으로 경운기를 타고 합창을 하면서 읍내로 간다.

읍내로 가는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고물 경운기는 땅이 패여져 만들어진 조그만 웅덩이만 있어도 그 충격이 고스란이 아이들에게 전달되어 아이들이 경운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게 되는데 그것까지도 아이들에게는 재미였다.

아이들은 엉덩방아를 찧고, 경운기가 방향을 틀 때마다 이리저리 쓸리면서도 깔깔거리고 웃으면서 읍내까지 갔고, 결국 읍내 구멍가게에서 영길이 외삼촌이 사 준 막대사탕 하나씩을 입에 물고 만화방에 들어가서 저마다 재미있는 만화책을 골라 만화책을 읽게 되었다.

태완이도 모처럼 만화방에 와서 만화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신자가 무슨 책을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 곁눈질로 신자를 쳐다 보지만 신자는 주변의 시선도 아랑 곳 없이 만화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신자 입에 물려 있는 막대 사탕은 벌써 다 녹고 없을 건데 신자는 막대에 묻어 있는 냄새까지 빨아 먹으려는 듯이 막대를 요리조리 굴리면서 책을 보고 있다.

태완이는 벌써 사탕을 다 먹었다.

다른 아이들은 사탕의 손잡이 부분을 잡고 동그란 사탕 부분을 입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빨아 먹고 있는데 태완이와 신자는 사탕을 우두둑 깨물어 먹었기 때문에 진작 사탕이 다 없어 졌다.

태완이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큰 눈깔사탕 3개를 사서 주머니에 넣고 만화방으로 다시 들어와서는 만화책 읽기에 열중하여 나가는지 들어가는지도 모르는 신자의 펼쳐진 책 위에 사탕 두 개를 슬쩍 올려 주고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읽다 만 만화책을 집어 든다. 신자는 만화책을 보다말고 태완이를 흘깃 보더니 눈인사를 하면서 하나는 호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개는 껍질을 까서 입에 넣는다.

태완이도 한참 재미있게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병길이와 영길이가 이제 집에 가자고 한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6시가 훌쩍 넘어 버렸고, 밖은 벌써 캄캄하다.

태완이도 엄마, 아버지께 직접 승낙을 받지 않았으므로 약간은 걱정이 되는 마음에서 아이들과 함께 집에 가려고 일어서는데 신자는 만화책을 좀 더 보다가 집에 가겠다고 한다.

신자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가지 않고 만화책을 더 보겠다고 하므로 태완이는 아이들에게 만화책을 조금 더 보다가 다 같이 가자고 하였으나 병식이와 영길이, 준길이는 6시 차로 집에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 들어가도 늦었다고 하면서 한사코 가겠다고 하였다.

태완이는 신자를 혼자 내버려 두고 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신자와 함께 가겠다고 하여 결국 태완이와 신자만 남고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먼저 가게 되었다.

지금 시간에 집에 들어가면 버스를 타고 가도 걷는 거리까지 합치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릴 것이고, 어차피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된통 꾸지람을 듣거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태완이나 신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신자는 무슨 생각인지 6시가 넘도록 만화책을 보다가 7시 종을 치는 소리를 듣고서야 보던 만화책을 그 자리에 두고 태완이에게 다가온다.

“태완아, 니 집에 안 갈끼가?”

태완이는 신자가 일어나서 자신에게 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만화책에 열중한 것처럼 하다가 신자가 묻는 말에 화들짝 놀라는 척 하면서 대답한다.

“책, 다 봤나?, 지금 몇 시고?”

“응, 나는 다 봤다, 그라고 지금 7시다, 니 이렇게 늦게 들어가도 괜찮나?”

“나는 오늘 늦게 들어가도 괘안타, 아버지 한테 허락은 안받았지만 할매한테 말해 났으니까 지금 들어가면 된다”

태완이는 사실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사내대장부가 그런 것 가지고 걱정을 하는 표정을 지으면 안 된다. 신자는 태완이의 이러한 마음을 읽었는지

“태완아 빨리 집에 가자. 우리 아버지는 개안치만 우리 엄마가 워낙 잔소리쟁이라서 걱정이 된다, 그라고 너거 아부지하고 엄마도 은근히 잔소리 쟁이지만 그래도 너거 아부지 엄마는 할매 말이라면 껌뻑 넘어가고, 할매는 또 니 말이면 껌뻑 넘어 가니까 니는 할매한테만 잘 말하면 그만이잖아.”

맨날 쌀쌀 맞게 굴던 신자가 오늘따라 이상할 정도로 사근사근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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