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詩가, 1시간짜리 웅변보다 더 가슴을 칠 수도 있다’
팔순 늦깎이 시인 진주사람 박준영

국악방송 사장까지 지낸 방송인
여섯 번째 시집을 낸
동심 가득한 만화영화 주제곡 ’우주소년 아톰‘ 작사가

그는 늦깎이 시인이다. 그래서 더욱 화제몰이를 하고 있지만, 이번에 나온 시집 제목도 화제다.

‘하루는 쿠키와 아메리카노다’ 라는 제목에서, 팔순의 나이와 상관없는 박준영의 젊은 감각이 아메리카노의 커피향처럼 스며든다. 이 시집 ’하루는...‘은 단시(短詩)들 위주로 엮여져 있다. 짧은 시들, 그냥 요즘 유행이라 싶어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아포리즘 같기도 하고, 문득 페이지를 넘기려는 손을 붙잡는 시들이 많다. 불끈 떠오르는 촌철살인 같이 짧고 가슴을 치는 선시(禪詩)들에 눈이 저절로 크게 떠진다. 그는 시인이며, 방송인이며, 작가이며, 방송국 경영인이며, 방송위원회 공직자였으며, 진주 출향인사다. 그래서 이 시인을 만나고 싶은 독자들이 많다.

그가 늦깎이 시인이어서 우리 곁에 이제야 온 시인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오래전부터 그는 우리들 곁에 있었다. 중년이 된 세대들이 tv를 통해서 친숙해진 ’우주소년 아톰‘ ’개구리 왕눈이‘ ’코난‘ ‘빨강머리 앤’ ‘독수리 오형제’ 등, 유명한 만화영화 주제가를 38편이나 작사했다. 그는 방송계의 유능한 작사가일 뿐 아니라, 방송맨으로서도 크게 성공한 드문 케이스다. tbc(전 동양방송)의 영화부장, kbstv 본부장 등을 거쳐 kbs미디어 사장, 대구방송 사장 등의 중책을 맡은 유능한 방송 경영인이었고, 차관급인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방송영상산업진흥원장 등을 지낸 후 국악방송 사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임했다. 그러니까 방송, 만화영화 주제곡 작사가 등의 타이틀이, 시인 타이틀 보다 먼저 그를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냥 넘길 수 없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방송 일에 종사해 온 사람이고, 그냥 종사가 아니라, 방송국 사장까지 지낸 사람으로 이런 시를 썼다는 데에 이르면, 호기심과 신기함도 누를 수 없게 된다. 이번에 출간한 ‘하루는 쿠키와 아메리카노다’를 받아 몇 번을 본지에 소개를 한 후, 바쁘다는 시인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환란의 시기에 진주 사람인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질문: 팔순에 나온 시집이라는데, 시집 제목이나 내용들이 늙은 시인 작품 같지 않다는 소릴 많이 들을 것 같다.

답: 시에 꼭 젊은 시, 늙은 시가 따로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질문: 그러나 연륜이 묻어있지 않는 시도 따로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그냥 짧은 시가 아니고 선시(禪詩)여서, 짧지만 페이지에 오래 머물게 하는 시들이 꽤 많다.

답: 원래 불경에 시적(詩的) 요소가 많다. 내가 불교신자니까 자연스럽게 나온 시들이다.

질문: 시에 함축된 의미들이, 때로는 암호처럼 숨어 있기도 한 것이 선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답: 불경은 그렇게 의미가 깊어 오랫동안 음미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만, 내 시는, 그러나 역시 문학이니까 문학의 테두리에서 보아주었으면 한다.

질문: 짧은 시라고 해서 사실 쉬운 시가 아니다. 산문을 짧게 써놓고 시라고 하는 사람도 많은데, 시집 ‘하루는....’ 속에는 짧지만 긴 노래보다 가슴을 치는 시, 웅변보다 강한 시들도 보인다,

답: 어떤 시들을 그렇게 느끼셨는지....

16글자의, 3줄짜리 짧은 시 ’자화상‘은,

“슬픔 하나

연민도 타버린

그림자 하나”

이 세 줄이 시의 전문이다.

이 시에 나오는 시인의 ‘자화상’은 지금의 시인만을 그린 시는 아닌 것 같다.

같은 시를 보고, 시인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꼭 같으라는 법은 없다.

사실 그래야 시다. ‘독도’도 그렇다.

“홀로 있는 섬

혼자가 아닌 우리

가슴의 섬”

이 석 줄짜리, 16글자의 짧은 시가, 사실은 한 시간짜리 웅변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친다.

질문: 이번이 처녀시집은 아니라고 들었다.

답: 여섯 번째 시집이다. 1998년 sbs 전무 시절에 데뷔했다.

질문: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답: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진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질문: 그때부터 불교신자였나?

답: 진주 주변 절에는 청담스님, 성철스님 같은 분이 계신 절이 있고 해서... 또 매일 아침 종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곤 했다.

질문: 그래서 선시를 많이 썼고, 이번 시집 ‘하루는...’도 따지고 보면 선시집 같다.

답: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시기와 불교를 가까이 한 시기가 거의 같다.

질문: 원래가 짧은 시 중심으로 시작(詩作)을 했나?

답: 긴 시도 있다. 사실은 문학적으로 많은 시험을 거쳤다. 4차원의 시, 아방가르드 풍의 시도 많이 썼다. 선문답 같은 시도, 사실은 4차원 세계에서 우러난 것으로 본다. 물론 짧은 시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시기도 있었다.

질문: 불교에 심취해서 불교의 화두 같은 시도 많은 것 같다. 불경을 매일 읽는다고 들었는데 어느 경을 가장 많이....

답: 금강경이다.

짧다고 해서 시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장난이나 재치만 가지고 시라고 할 수는 없다.

질문: 최근 1줄짜리 2줄짜리 시가 많이 보급되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SNS의 짧은 문장이, 함축미를 살리다가 시적(詩的) 표현이 되기도 한다고 보는데.... 자신의 시와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답: 짧은 문장의 글들이 유행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선시 지향적인 시를 쓰는 사람이라 짧은 시가 나온다. 그러나 찰나적인 느낌, 또는 말장난 같은 재치만 가지고 시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질문: 짧아도 내용이 있는 시와 그렇지 않은 그냥 ‘짧은 문장’이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답: 그렇다. 시가 재치 같은 말장난만은 아니다. 짧지만 그 짧은 몇 줄 속에 함축된 의미나 철학이, 시적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질문: 국내·외에 걸쳐 좋아하는 시인은?

답: 국내 시인으로는 백석, 외국 시인으로는 랭보와 보드레르를 좋아한다.

송가인 등 트롯 명인들이 대개는 국악부터 시작한 친구들이다. 국악의 부활되기 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더욱 빛을...

질문: 최근 트롯 열풍이 대단하다. 공중파도 넘기 힘들다는 30% 벽도 쉽게 넘었다. 이를 계기로 트롯을 비롯한 가요가 선풍적으로 우리 문화계를 흔들고 있다. 국악방송 사장을 지낸 경험에 비춰볼 때.... 트롯처럼 국악 선풍이 일어날 가능성은?

답: 글쎄... 그 질문에는 합종연횡, 또는 융합이라는 대답을 드리고 싶다. 트롯으로 우리 사회를 장악하다 시피 한 송가인 등 트롯 명인들이 대개는 국악부터 시작한 친구들이다. 국악이 그 자체로 부활되기 보다는 다른 장르와의 결합으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고 본다.

질문: 트롯 붐과 함께, 최근 우리 가요의 가사들이 격이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가요의 가사와 시를 어떻게 생각하나?

답: 서로 상승작용하는 것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면 조용필 노래의 가사들이 대개 좋다. 가장 최근에 예로는 BTS가 있다. BTS는 가사가 때로는 거의 철학적이고, 때로는 거의 시다.

질문: 긴 시는 쓰지 않았나?

답: 긴 시도 쓴다. 다섯 번째 시집은 긴 시들이다. 아방가르드(전위)적이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질문: 선시를 쓰는 시인의 가정은 어떠신지 묻고 싶다. 가정 행복의 비결은?

답: 우리도 어쩌다 싸우는데, 부부싸움 이유는 사실 별 것 아니다.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 부부행복의 비결이다.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빨리 잊고 즐겁게 지내기로 애를 쓰고 있다. 아내와 여행을 많이 한다. 전국 유명사찰은 한 번씩 거의 다 다녀왔다. 나도 아내도 매일 30 분씩 독송하는 것이 부부간의 형평성을 유지한다고 할까...

질문: 현재 유행처럼 번지는 졸혼, 비혼... 또는 혼밥·혼술을 어떻게 보는가?

답: 인류가 버틴 것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낳은 점이 있다면,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도 생각하고 나도 살아남기도 생각하는 데서 공동체는 유지된다. 지금은 공동체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질문: 자신이 기성세대로서 감각이 늙었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답: 신체가 늙으면 생각도 늙는다. 젊어지려고 하기 보다는, 나이가 들었지만 새롭게, 새롭게, ‘다시 보기’, ‘뒤집어 보기’를 잘 해야, 젊어지지는 못하더라도 낡아지지는 않는다.

-정리: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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