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3.함정

5

“그래, 읍내에서 만화책을 보다가 좀 늦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개않은데, 니가 걱정이다.”

“니는 좋겠다, 남자라서”

“그기 남자하고 무신 상관이고?”

“나는 여자니까 집에서 감시가 심하잖아, 밤에는 대문 밖에도 못 나가게 하고, 걸핏하면 가시나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가시나 가시나 가시나..., 가시나 소리가 귀에 못이 박힌다.”

“내가 가시나가 되고 잡아서 됐나, 자기들 끼리 좋아하다가 가시나를 낳아 놓고 그기 꼭 내 잘못인 것처럼 말한다니까.” 하면서도 뭔가 불안한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태완이에게 빨리 집에 가자고 한다.

태완이도 집에 가서 혼날 생각에 불안하기도 하였지만 신자에게 불안한 마음을 보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 괜찮다고 큰소리를 쳤다.

혼이 덜 나려면 한 시라도 빨리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신자는 걸어서 집에 가자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 늦은 밤차라서 중간에 별로 손님도 없고 해서 서지도 않고 달리므로 30분 정도면 충분하지만 걸어서 가려면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은 걸려야 한다.

“아이다, 걸어가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버스를 타고 퍼뜩 가자,”

“우리 얘기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걸어서 가자, 까짓거 한 번 혼나면 되지 뭐”

신자는 한사코 걸어가자고 하므로 태완이는 신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십리 거리에 있는 집까지 걸어가게 되었다. 사실 태완이도 신자와 단 둘이 걸어 보는 것이 처음이었으므로 오히려 신자보다 태완이 자신이 그것을 더 바랐는지도 모른다.

얇은 옷만 입고, 떨어져 구멍이 나기 직전의 운동화로 한 겨울 십리 밤길을 걷는다는 것은 예사 각오가 아니면 쉽게 생각하지 못할 만용이다.

신자는 털옷에 두터운 털실로 짠 목도리까지 걸치고 있었으므로 덜 추울는지 모르지만 태완이에게는 단단한 각오를 해야 하는 힘든 길이다.

한 겨울, 깜깜한 밤길을 국도 따라 걷는다는 것 자체로도 어려운 일이지만 태완이와 신자에게는 추위 말고도 싸워야 할 게 또 있다.

오는 도중에 사람 사는 집도 없는 길가에 오래 된 낡은 방앗간이 있다. 이 방앗간은 언제 지었는지 모르지만 함석으로 된 외벽은 녹이 쓸 대로 쓸어 전체적으로 검붉은 색을 띠고 있고, 더욱이 함석은 못으로 고정시키는데 수 십 년 동안 비바람에 시달리면서 못 구멍이 넓어져 조그만 바람에도 함석조각이 흔들리면서 쿵쾅거리는 소리를 낸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먼저 온 바람에 함석 조각이 들려 지면서 들려진 사이로 뒤 따라 온 바람이 들어가고 나오면서 음흉하고도 기괴한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꼭 귀신이 우는 소리 같다.

그리고 방앗간을 지나자마자 폐허가 된 공동묘지가 있어 공동묘지의 스산함과 방앗간의 기괴한 모습이 오버랩되어 마치 공포영화에서 나오는 장면과 흡사하다.

이 공동묘지는 경주 최씨 문중의 종중 묘로서 엄밀하게 말하면 공동묘지가 아니지만 최씨 문중이 몰락하면서 지금은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오래 전에 세운 비석은 누가 훔쳐갔는지 모르지만 비석이 없어졌고 비석이 없어진 자리가 파 헤쳐진 그대로 남아 있어 더욱 황폐해 진 느낌이 든다.

이 묘지를 두고 어른들은 ‘최씨 문중 묘’ 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은 몇 년 전 가설극장에서 “월하의 공동묘지”영화를 본 후부터 아예 공동묘지라고 부르고 있으며, 어른들도 아이들 따라 곧잘 공동묘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6.

경주최씨 종중묘를 공동묘지라고 불리어진 것은 가설극장이 들어오면서 부터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설극장에서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부터이다.

태완이 동네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이기 때문에 부근에는 놀이시설이라고는 전혀 없고 영화 한 프로라도 보려면 진주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가설극장이 들어온다.

시커먼 트럭 양 옆으로 페인트로 그린 영화 포스터를 달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가설극장이 왔음을 알리면 아이들은 그 트럭이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빠져 나갈 때 까지 따라 다닌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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