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용
부산 자민총회장
부산 정치개혁시민연합회장
본지 보도자문위원

지금 우리 사회에는 투표 조작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가 널리 퍼져있다. 전자개표와 사전투표 때문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4.15 총선 이후 비극적이고 소모적인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십상이다. 집권여당에서는 “부정은 없었다. 부정선거 의혹 제기는 피해망상이며 음모론일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고, 자유시민은 4.19처럼 피 흘리며 죽고 다쳐가며 “이번 총선에 부정이 만연했다”고 울부짖을 게다. 유혈사태가 일어나더라도 정확하고 효과적인 저항이라면 두렵지 않다. 그러나 콕 집어서 증거를 제시할 수 없다면? 소모적 비극이 될 뿐이다. 그래서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된다. 무엇인가 해야만 한다. 냉정하게 보면 전자개표는 큰 문제가 아니다. 후보 중 한명이라도 개표과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수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개표과정에 이의를 제기해도 되고 일부를 샘플링해서 “수개표를 해보자!”고 외쳐도 된다. 문제의 핵심은 사전투표이다. 세계에서 가장 허술한 투표 시스템이다. 구멍이 뚫려 있다. 흉측한 지하세력이 잠적한다면 얼마든지 표를 바꿔치기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전투표에 관해서만은 눈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잘 찍기만 해서 뭐하나? 잘 지켜내야 자유 한국 선거혁명을 이룰 수 있다.

투표일이 공휴일인데도 사전투표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투표일이 근무일이거나 주말 휴일임에도 사전투표 자체가 없다. 또 한국처럼 ‘누구든 전국 어디서나 사전투표’하는 나라도 없다. 다른 나라에서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사람만 자기 거주 지역에서 사전투표를 할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누구든 전국 어디서나’ 수많은 장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해 놓았기 때문에 사전 투표를 관리하고 감시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선거구 별로 내용이 달라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각 선거구별로 각기 다른 종류의 투표용지를 미리 준비해 놓을 수 없다. 한 투표소에 몇 명이 올지, 어느 선거구에서 투표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표자가 투표소에 나타나야 투표용지가 프린터 출력 된다. 다시 말해서, 전국 사전투표소 각각에서 각 투표자의 거주지에 따라 전국 선거구 투표용지가 즉석 프린터 출력된다. 복사 프린터로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것을 연상시키는 과정이므로 프린터 출력 때 조작이 없는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게다가 투표가 이루어진 사전투표지는 매일 마감 후에 지방선관위로 이동되어 보관된다. 그런데 지방선관위의 보관 장소 및 보관 원칙에 어떠한 법률적 원칙도 없다. 한마디로 며칠 동안의 보관과정은 ‘무법지대’이므로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든 전국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사전투표는 관리 포인트가 엄청 복잡한 만큼, 더욱 더 정교한 프로세스로 이루어져야 할 뿐 아니라, 시민에게 확실한 참관 · 감시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선관위를 믿어야겠지만, 선관위 자체가 불법을 자행해도 모르게끔 되어있는 게 문제다. 법에는 ‘봉인이 가능한 투표함’을 사용하도록 돼 있는데 ‘사실상 봉인이 불가능한 자루’를 사용한다. 법에는 투표지에 일련번호를 사용하게 돼 있지만 임의채번(주어진 숫자 구간 안에서 아무번호나 골라내어 사용하는 것)을 사용한다. 법에는 투표지에 바코드를 표시하게 돼 있는데 사전투표용지에는 QR코드를 표시한다.

선관위의 이 같은 행태는 좋게 생각해 주면 ‘자기들 편한 방식’을 취한 것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투표지를 바꿔치기 할 수 있도록 대문을 열어준 것이 된다. 그러나 근본 문제는 선관위가 아니라 법 그 자체이다. 어쩌면 선관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범죄를 위한 법’을 지켜야 하는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현재의 사전 투표는 ‘투표 조작을 위한 제도’라 할 수밖에 없다.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문제가 극복돼야 한다. 법률(공직선거법 제151조 6항)에는 사전 투표지에 ‘투표소별 선거구별 발행 일련번호’를 ‘바코드’로 인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장 사전투표 용지는 전국 중앙 컴퓨터가 일련번호 대신에 임의채번하여 이를 QR코드로 인쇄한다. 일련번호가 사용되지 않은데다가 QR코드로 인쇄돼 있기 때문에 참관 · 감시가 사실상 불가능 하다. 투표소에서 참관 · 감시하는 시민은 “이 투표소에서 몇 매가 인쇄됐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또한 개표소에서 참관 · 감시하는 시민은 “전국 수천 개 투표소 각각에서 우리 개표소로 몇 표씩 보냈는지?” 대조 · 검증할 도리가 없게 돼 있다. 한마디로 임의채번 QR코드를 투표지에 인쇄하는 현재의 방식은 투표소에서든 개표소에서든, 참관 · 감시 시민에 의한 대조 · 검증이 불가능 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법령에는 ‘사전투표함’이라는 단어가 무려 스무 번, ‘봉인’이라는 단어가 무려 51번에 걸쳐 등장한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함체’가 아니라, 사실상 봉인이 불가능한 ‘함체 뚜껑 밑에 적당히 부착시킨 자루’를 ‘사전투표함’이라 부르며 사용하고 있다. 이 자루를 거치하기 위해 ‘관내 사전투표함 받침대’라는 물체를 사용한다. 이른바 ‘받침대’는 뚜껑을 떼어낸 ‘함체 몸통부’로서, 공직선거법에 거론조차 되지 않는 불법 비품이다. 자루는 봉인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전투표지가 며칠 동안 보관되는 지방선관위 사무실에 누군가 들어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표를 바꿔치기 할 수 있다.

사전투표는 통상 2일에 걸쳐 이루어진다. 그 후 사전투표지는 지방 선관위 사무실에서 보관된 다음 개표소로 이동한다. 이때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표 바꿔치기’에 무방비가 된다.

그런데 사전투표함 보관장이 갖추어야할 조건에 대해서 공직선거법, 시행령, 규칙에 단 한마디도 없다. 지방선관위가 사무실 창고에 처박아 두어도 ‘적법’이다. 지방선관위에 따라 자기 입맛대로 때로는 제법 그럴 듯하게, 때로는 허술하게 보관장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전투표함 보관장은 무법지대이다. 우리나라의 사전투표제는 ‘누구든 전국 어디서나’ 투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내 선거구가 아닌 곳’에서 투표하는 비중이 높다. 관외 사전투표와 부재자 투표는 우편을 통해 지방선관위에 전달된다. 지방선관위는 이를 우편 봉투째 ‘우편보관함’이라 부르는 함체 속에 넣는다. 그런데 상당수 지방선관위는 관내 사전투표함은 창고든 뭐든 그나마 별도 공간에서 보관하지만, 우편보관함은 사무실 아무데나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서도 아무런 규정이 없다. 부재자 투표지와 관외사전투표지를 담은 우편보관함 역시 제대로 된 보관장에서 보관해야 한다. 전국 수천 개 투표소 각각에서는 전국 선거구 별로 몇 매의 투표용지가 출력됐는지 알 수 있으며, 이는 전국 중앙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런데 전국 선거구(개표소)에서는 사전투표소별 출력 매수를 집계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표소(선거구)에서 사전투표소별 출력 매수를 집계하여, 출력 시점에서 취합된 ‘투표소별-선거구별 출력 매수 데이터’와 대조 · 검증하는 것이 불가능 하다. 범죄 집단이 지방 선관위에 스며들어 투표지 매수만 맞추어 표를 바꿔치기하면 완전 범죄가 돼버린다. 예를 들어 지방선관위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서 자루를 뚜껑으로부터 분리한 후 매수를 센 다음, 동일한 수량의 가짜 투표지를 집어넣고 자루를 뚜껑에 붙여놓으면 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사전투표는 구멍이 뚫려 있는 엉터리 제도다. 문제점 하나씩만 보면 별로 심각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들이 모두 모이면, ‘표 바꿔치기 범죄를 위한 제도’가 된다. 차라리 ‘간첩을 위한, 간첩의 제도’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허술하다는 것이므로 이번 4.15 총선만큼은 전 시민이 감시자가 되어야 하며 그 옛날 자유당의 3.15 부정선거로 하여금 4.19의 도화선이 된 그런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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