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3.함정

7.

공동묘지가 다가오자 조금 전 까지도 용감한 척 하던 신자가 갑자기 무섭다고 하면서 태완이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더니 공동묘지가 있는 야트막한 산길이 보이자 신자는 느닷없이 태완이의 손을 꼭 잡고 몸을 밀착 시킨다.

신자의 갑작스런 행동에 태완이는 거의 숨이 멎을 뻔 하였다.

심장의 콩닥거리는 소리가 너무 세 행여 신자가 그 소리를 듣고 깔깔거리고 웃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신자가 잡지 않은 손으로 신자 몰래 가슴을 꾸욱 누르기까지 하였다.

생전 처음으로 여자, 아니 신자의 손을 잡아 본 태완이는 어린 나이에도 신자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한 날이라고 하였다.

집으로 오는 도중, 간간히 지만 지나는 차가 나타나면 태완이는 신자의 손을 얼른 놓았다가 슬그머니 다시 잡아 주곤 하였다.

정말이지 어린 날의 행복한 추억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태완이는 한동안 부끄러워 신자의 집 부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는데 겨울 방학이 끝나고 신학년이 시작될 무렵 신자네가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나오더니 6학년에 올라가기 전에 신자는 끝내 서울로 이사를 가 버렸다.

신자가 이사를 간 후 간간이 풍문으로만 신자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뿐, 신자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신자네가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이 나온 후 태완이는 밤이 되면 마을 입구에 있는 신자 집으로 찾아가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면서 신자네 집을 서성거리는 일이 많아 졌고, 태완이가 신자 집 앞을 서성일 때는 아버지가 즐겨 부르던 ‘그 집 앞’ 노래를 흥얼거리도 하였다.

그 노래처럼 태완이는 오가며 신자네 집 앞을 지나 다녔고, 누구의 눈에 띌까봐 몸을 숨기곤 하였다.

‘그 집 앞’노래는 누군가가 태완이를 위하여 만들어 준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신자가 살던 집 부근을 서성이면서 그 노래를 부를 때면 노래의 가사 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어쩌면 태완이의 마음을 그렇게도 잘 그렸는지...

신자가 이사를 간 후 마을 앞에 신작로가 생기면서 신자 집이 뜯겨 나가고 흔적도 없어졌지만 태완이가 진주로 가기 위하여 버스를 타려고 도로를 건널 때는 바로 옆에 있는 횡단보도를 놔두고 꼭 신자 집이 있던 자리를 통하여 무단횡단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심하게 넘겨 버리지만 태완이는 신자와의 짧았던 추억을 회상하는 의식과 같은 행위였다.

그렇게 신자와 헤어진 후 태완이는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도무지 학업에는 관심이 없고 머릿속에는 언제나 신자가 자리 잡아 떠날 줄을 몰랐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어 결국 제대로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 둔 후 집에서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신자와의 추억을 첫사랑의 장으로 넘겼지만 태완이는 과거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라고 하면서 언제라도 신자가 나타난다면 신자에 대하여 타오르는 사랑을 남김없이 표현할 것이라고 스스로 수없는 다짐을 하였다.

8.

태완이 아버지인 지서도 옛날 소학교 밖에 나오지 못한 채 할아버지의 농사일을 이어받은 전형적인 시골의 농삿꾼이다.

태완이의 아버지는 자기 이름을 쓰고 더하기 빼기 정도의 숫자만 알아 남에게 속지 않을 정도로만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완고한 농부였으므로 태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자 굳이 야단을 치면서 학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태완이가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학교에 낼 등록금을 가지고 가출을 하였다가 그 돈을 다 쓰고 귀가한 후 학교에 가기 싫다하므로 그 때부터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태완이의 뜻에 따라 학교에 안 보냈다고 하지만 어떤 측면에는 덩치도 좋고 힘도 센 태완이가 상머슴 정도로 보여 일손을 하나 벌었다는 생각을 하였음이 틀림없다.

태완이 할아버지도 태완이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태완이가 중학교 중퇴를 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병식이가 오히려 불쌍해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어두워 질 때까지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공부를 해야하는 고된 일과를 보내는데 반하여 학교에 가라거나 공부를 하라고 다그치지 않는 아버지가 고맙기 까지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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