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선인의 풍속-13

조선시대 최고령 과거 급제자는 고종 24년(1887년) 나이 83세에 개성별시문과의 병과로 급제한 박문규다.(과거시험은 1~3등까지:갑과, 4~10등까지:을과, 11~마지막 33등까지:병과로 분류) 고종은 이제 막 급제한 박문규를 병조참지(정3품 당상관)에 특명으로 제수하고, 1년 후 1888년 가선대부 행용양위호군(종2품)에 제수되어 초고속 승진하고 얼마 후 세상을 등졌다.

박문규(朴文逵, 1805년 ~ 1888년)는 조선후기의 시인 겸 문신이다. 호는 운소자(雲巢子). 많은 재산을 모았으나 방탕하여 가산을 탕진하였다. 그 후 40세부터 면학의 뜻을 가다듬고 시문(詩文) 공부를 하여 고시(古詩) 수만 편을 외웠으며, 근체시(近體詩)에 능하여 청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쳤다. 1887년 83세에 개성별시문과(開城別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최고령 과거 급제자라는 기록을 남겼다.

촤연소 급제자는 고종 3년(1866)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이건창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당시 나이가 15세였다. 나이가 너무 어린 관계로 4년 후 19세에 이르러서야 홍문관직에 나아갔다.

1874년 서장관(書狀官)으로 발탁, 충청우도 암행어사가 되어 충청감사 조병식(趙秉式)의 비행을 들쳐 내어, 모함을 받아 벽동(碧潼) 유배를 당하였다.

1880년 경기도 암행어사, 식량문제, 구휼, 세금감면 정책 등을 펼쳤으며, 1890년 한성부 소윤에 제수 되었다. 백성들로부터 이건창의 선정비(善政碑)와 불망비(不忘碑)가 각처에 세워졌으며 47세에 세상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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