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4.배신

1.

태완이는 공장에 다니다가 배알이 틀어져서 뛰쳐나올 때도 무시당하는 것에 화가 났지 못다 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병식이가 군대에 간다고 하니 뒤늦게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에 후회를 하였다.

군대에 가려면 최소한 중학교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태완이는 중학교를 마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군대에 갈 수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병식이는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군대에 간다.

푸른색의 멋진 군복을 입고 신자 앞에 늠름하게 나타나 멋진 구령과 함께 경례를 붙이면서 “육군 병장 한태완, 신자씨께 데이트를 청합니다” 하면 아무리 콧대 높은 아가씨라고 할지라도 데이트 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병식이와 같이 군대에 가고 싶었지만 중학교도 나오지 못한 자신은 현역은 못가고 후줄근한 개구리 복을 입고 면사무소나 파출소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잡부에 불과한 방위병으로 근무하여야 한다.

동네 형들 중에서도 방위병 복무를 한 사람들이 많은데 방위병 복장으로 심부름을 다니는 걸 보면 하나같이 덜 떨어지고 바보같이 보인다.

방위들이 스스로도 ‘좆도방위’라고 하면서 비하하는 것을 보면 방위가 얼마나 재미없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부류인지 짐작이 간다.

태완이도 공부를 안한 덕분으로 ‘좆도방위’가 되었다.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신자가 군대에 가는 병식이를 만나러 몇 년 만에 고향땅에 나타나 환송 파티를 하는 도중 태완이에게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도 않고 병식이 하고만 짝을 이루어 노는 모습, 보란 듯이 서로 몸을 기울여 밀착하기도 하고 술잔을 넘겨 줄 때 슬쩍 손을 잡는 모습, 신자가 밖으로 나가면 어느 틈에 병식이가 따라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그럴 때면 신자의 옷이 구겨져 있고 어떤 때는 신자가 손빗질로 머리를 다듬으면서 들어오는 모습을 하여 태완이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행동들을 하였다.

두 사람의 그러한 행동들은 태완이로 하여금 병식이에 대한 질투보다는 신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태완이는 산길을 오르면서 문득문득 신자의 행동들을 생각하였고, 그 생각이 들 때 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하였다.

신자는 그동안 병식이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음이 분명하다.

“신자야 반갑데이, 내 그동안 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기나 하나?”

하면서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신자는 일부러 딴청을 팔면서 결코 손을 맞잡아 주지 않아 태완이 손을 부끄럽게 만든다.

“태완이 너도 이제 어른이 다 됐네. 그래, 반갑다.”

신자는 그렇게 말은 하지만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전혀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고, 오히려 옆에 있는 병식이의 눈길을 더 의식하는 것 같음을 태완이의 무딘 성격에도 고스란히 읽혀졌다.

신자는 서울에 사는 아가씨답게 몸에 착 달라붙는 청바지 하고 하얀 브라우스가 너무 잘 어울린다. 게다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지 피부도 하얗고, 연하게 살짝 바른 화장이 빨간 입술하고 어울려 이 농촌 어디에서도 저렇게 예쁜 여자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촌이 아니라 도시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 연방 서울 아가씨다. 태완이는 이런 신자의 모습에 강한 애정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 니는 서울에서 뭐 하노?”

“고등학교 나오고 나서 여기저기 회사에 취직해서 지내다가 이게 아니다 싶어, 미용기술을 배워 독립을 하려고 지금은 미용학원에 다니고 있다”

태완이는 신자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말에 그만 자존심이 상한다.

신자도 태완이가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실을 잘 알고 있고, 마찬가지로 태완이는 신자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자신이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런 말을 하여 태완이의 약점을 건드리는지 모르겠다.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