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 건강이정표

인산가 김윤세

전주대학교
경영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인산의학 발행인
인산가 회장

問爾窓前鳥 何山宿早來

應識山中事 杜鵑花發耶

문이창전조 하산숙조래

응식산중사 두견화발야

창문 앞에 와서 지저귀는 새야!

어느 산에서 자고 날아왔느냐?

산중의 소식을 너는 잘 알리라…

산에는 지금 진달래꽃이 만발했겠지?

‘김삿갓’이라는 별호로 더 잘 알려진 방랑 시인 김병연金炳淵의 ‘진달래꽃 소식을묻다問杜鵑花消息’라는 제목의 시이다. 지은이의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성심性深이며 별호는 난고蘭皐이고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이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 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집안이 멸족을 당하였다. 노복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으로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해 숨어 살다가 후일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어 형제는 부친에게 돌아갔으나 아버지 안근安根은 화병으로 죽었다.

아버지 안근이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 〈논정가산충절사, 탄김익순죄통우천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의 죄를 규탄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試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보인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견디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른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그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라도 지방을 유랑하다가 동복현에 이르러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 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철종 14년(1863), 5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다. 뒤에 아들 김익균이 아버지의 유해를 강원도 영월군 의풍면 태백산 기슭에 묻었다.

1978년 김병연의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광주 무등산 기슭에 시비詩碑를 세웠고 그 뒤 1987년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영월에 시비를 세웠다. 그의 시를 묶은《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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