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4.배신

2.

신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태완이는 서울까지 가서 신자를 만난 적이 있다.

신자의 졸업식 날에 맞추어 가려고 하였으나 신자가 그날은 가족들과 같이 있어야 된다고 하여 졸업식이 끝난 며칠 후 서울에서 신자를 만났다.

태완이는 서울에 처음 가본 것이어서 어디가 어딘지 도통 몰랐지만 신자가 명동으로, 청계천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을 시켜 주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청계천 입구에 있는 삼일빌딩이었다.

삼일빌딩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고층 건물이다.

삼일빌딩 앞에서 태완이는 촌놈들이 다 하는 짓인 저 건물이 몇 층인지 세어 보고 있는데 신자가 우스갯 소리를 하였다.

『촌놈이 서울 삼일빌딩 앞에 서서 도대체 몇 층이나 되는지 고개를 뒤로 재끼고 세어 보고 있는데 서울사람이 다가와서 몇 층까지 세어 봤느냐고 물었다.

촌놈은 25층까지 세어 보았지만 뭔가 찜찜하여 아직 20층 까지 밖에 못 세어 봤다고 하니까 그러면 1층에 10원씩 하여 200원을 내라고 하여 촌놈은 할 수 없이 200원을 주고 나서 속으로 서울 놈도 별수 없네 내가 25층까지 세어 봤는데 20층 밖에 안 세어 봤다고 하니까 속아 넘어 가더라』는 말을 하여 둘이서 깔깔 웃은 적이 있다.

그날 태완이는 신자에게 맛있는 것을 사 줄 테니 제일 비싼 데를 가자고 하여 신자가 데리고 온 곳이 삼일빌딩 지하였다.

지하로 내려가니 과연 서울에 있는 건물이었다.

지하는 마치 광장처럼 넓은데 그 넓은 지하에는 몇 개의 대형식당과 전자제품 판매점, 양복점, 양품점등이 빼곡히 들어와 있어 또 다른 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둘은 지하세계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구경하다가 신자가 ‘약속’이라는 간판이 붙은 분식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신자는 촌놈들의 필수코스라고 하면서 남산을 데리고 갔는데 가는 길목에 남대문이 있어 먼발치에서 남대문을 구경하고 남산까지 올라갔다.

남산 정상에는 사진으로 본 야외 음악당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남산팔각정에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서 신자와 같이 먹는 브라보콘은 그야말로 꿈의 현실이다.

신자와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면서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결국 감정의 공유이다.

사랑하는 감정의 공유인 것이다.

팔각정에서 나온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서울 시내가 한눈에 다 보이고 맑은 날이면 멀리 인천 앞바다까지 보인다고 하는 남산타워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한테 차비는 얻어 왔고, 또 남자가 째째하게 굴지 말고 신자한테 맛있는 것을 사주라고 하면서 할매가 용돈도 듬뿍 주었지만 막상 서울에 오니 생각보다 물가가 많이 비싸 돈을 아껴 쓰지 않을 수 없다.

내려가는 길에 엄마, 아버지는 몰라도 할매의 선물은 사 가지고 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입장료가 생각보다 부담스러워 망설이고 있는데 신자는 태완이의 주저하는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였는지 들어가 보자고 한다.

“나도 아직 남산타워를 올라가 보지 않았는데, 같이 올라가 보자”

신자가 같이 구경하자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더 이상 망설일게 없다. 태완이가 표를 끊으려고 하자 신자가 다가와서 자신이 표를 끊겠다고 한다.

“니가 무신 돈이 있노, 나는 할매한테 얻어 온 돈도 있는 기라. 오늘은 내가 돈을 내테니까 니는 가만 있거라.”

“그래도 니가 서울까지 왔는데 서울 구경은 내가 시켜 줘야지. 그리고 아까 밥을 니가 샀잖아. 그러니 이 돈은 내가 낼게.”

“아이다, 그래도 내가 남잔데...”

결국 표는 신자가 끊었다.

둘은 남산 타워 전망대까지 가서 서울 시내를 둘러보고, 매연 때문에 뿌옇게 윤곽만 보이는 인천 앞 바다지만 바다까지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는 선물을 파는 선물코너가 있어 그곳에서 태완이는 신자에게 줄 선물로 유리상자 안에 한복을 곱게 입은 남녀 인형 한 쌍을 샀다. 태완이는 좀 큰 것으로 사려고 하였으나 유리 상자로 되어서 들고 다니는게 부담스럽다고 하면서 제일 작은 것을 골랐고,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막상 돈 차이는 그렇게 많지 않아 태완이는 기왕이면 큰 것으로 사자고 하였으나 신자는 작은 것으로 고집하여 결국 작은 것으로 골랐다.

“신자야, 이거 알제?”

“아이, 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이런 걸 사니. 그리고 사람들이 보면 웃겠다.”

“그래 남자는 내고, 여자는 니다, 알겠제?”

“그래, 고마워, 참 예쁘게 잘 만들었다, 그지?”

“아이다, 니가 이 인형보다 더 예쁘다.”

“정말?, 내가 더 예쁘게 보여?”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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