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류준열

카주라호 숱한 사원 외벽은 조각된 군상의 숲.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흘러내려 벗겨질 것 같은 얇디얇은 옷 걸친 몸에서 살 냄새 솔솔 풍기는 신상의 세계. 힌두교와 밀교(密敎) 뒤섞여 어우러진 깊은 밀의(密意) 지닌 조각상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수많은 남녀 군상으로만 보이고, 가슴 저리게 하는 이야기나 종교적 밀의 찾지 못하고 겉만 더듬다.

카주라호 사원은 시공을 뛰어넘어 끓어오르는 인간 본래의 생명력, 원초적 본능 살아 숨 쉬는 육감적 미의 전시장. 유연하게 흐르는 관능미 넘치는 어깨와 허리, 만지면 터질 것 같은 풍만한 가슴, 농염하게 탄력 넘치는 엉덩이, 쭉 뻗어 내린 두 다리, 얼굴 간지럽게 다가오는 뇌쇄적 황홀이다.

눕거나 앉거나 서서 하나를 이루는 상, 마주 보거나 뒤에서 혹은 무릎 위에서 하나를 이루는 상, 두 명 세 명 여러 명 어울려 하나를 이루는 상, 여러 자세로 혀끝 부비며 하나를 이루는 상, 하나가 되는 모습 보고 독특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상, 하나가 되는 법 가르치고 배우며 실습하는 상, 천태만상의 기묘한 수많은 농염의 군상. 그 누구에게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 어느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않는 있는 그대로 본능 드러내며 숨김없이 욕망의 질펀한 향연 펼치고 있다. 외설이 외설로 보이지 않는 원초적 환희와 행복 넘쳐흐르고, 몸에서 우러나는 절정의 교성 솟아오른다. 전갈 간질거리며 기어오르는 허벅지에서 시작하여, 배꼽 아래 잠시 머물다 터질 것 같이 부푼 가슴 타고, 치밀어 올라 입술 화사하게 벌린 희열의 요염한 미소로 피어난다.

천 년 세월 카주라호 사원 앞에서 인간의 욕망과 본능 바라보며, 세월 뛰어 넘어 전해오는 고려가요 쌍화점 한 소절 떠올려 본다.

쌍화점(雙花店)에 쌍화(雙花) 사라 가고신/회회(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긔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

*밀교 : 7세기 대승불교의 화엄(華嚴)사상 ·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종파

*쌍화점 : 고려 충렬왕(忠烈王:재위 1275∼1308) 때의 가요. 모두 4절로 된 노래는 당시의 퇴폐적인 성윤리(性倫理)가 잘 나타나 있으며, 봉건시대의 금기(禁忌)이던 왕궁을 우물로, 제왕을 용(龍)으로 표현한 점 등이 특징임.

*네팔-인도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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