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배신

2.

신자는 서울에 와서 3년이 지났으므로 서울말이 익을 만하다.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한 말투보다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가 정말 예쁘게 들린다.

“정말이다, 니가 영화배우 문희나 윤정희보다 더 예쁘다.”

“아냐, 나는 원래 못 생겼다. 우리 신숙이 언니는 정말 천사같이 예쁜데 나는 우리 엄마가 아무렇게나 만든 것 같애.

“아니다, 내 눈에는 신숙이 누나보다 니가 천배나 만배나 더 예쁘게 보인다.”

신자 얼굴이 발겋게 상기된다.

여자는 예쁘다고만 하면 무조건 좋아한다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신자가 그렇게 좋아하면서 티 없이 웃는 모습은 처음 본 것 같다.

남산에서 놀다가 내려오면서 창경원까지 가 보려고 했지만 벌써 어둑살이 끼기 시작하였고, 내려오는 열차편이 마땅찮아 다음에 나머지 구경을 하기로 약속하고 태완이는 밤차를 타고 진주로 내려 왔다.

신자가 서울역까지 데려다 주었고, 다음에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한 채 헤어졌다.

그러나 그 만남이 끝으로 더 이상 만날 기회가 없었고, 아예 서로간에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태완이네 집이나 신자네 집에 전화가 없었기 때문에 연락을 하려면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신자에게 몇 번 편지를 보냈지만 끝내 답장이 없었던 것이었다.

3.

태완이는 신자가 병식이의 입대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니는 병식이가 군대에 가는 것을 우째 알았노?”

“왜 몰라, 우리는 그동안 가끔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는데...”

병식이는 신자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태완이가 신자에게 몇 번 편지를 보냈지만 끝내 답장이 없었는데, 아마도 신자가 병식이와는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음이 분명하다. 병식이와 신자가 서로 만났다면 병식이가 서울을 가던지 신자가 진주로 내려오던지 했을 것인데, 이 나쁜 놈은 그 동안 신자 얘기는 입에도 올린 적이 없다.

태완이도 신자와의 추억담을 혼자의 가슴에 고이 간직했을 뿐,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병식이를 만나 장난을 칠 때도 신자 얘기는 하지 않았던 태완이다.

신자와의 대화에 병식이가 끼어든다.

“신자야, 니도 서울 애들 보담은 우리같이 촌놈들이 더 좋다고 했제?”

“그래 깍쟁이 같은 서울 애들 보다야 고향에서 같이 큰 애들이 더 좋지”

신자는 좀은 어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울말을 쓰면서 “더 좋지” 하는 말에 액센트를 넣어 일부러 더 강하게 말하는 것 같다.

신자와 병식이는 서울에서 만나 같이 놀던 얘기를 하면서 이어가는 말이 끊어질 줄 모르고 있고, 공연히 심술이 난 태완이는 말없이 술만 마시다 보니 초저녁부터 벌써 술에 취하는 것 같은데 정신은 점점 더 맑아져 온다.

태완이는 정말 엄청스럽게 술을 마셨다.

병식이의 환송연을 위하여 친구들이 돈을 조금씩 모았지만 태완이가 마신 술값 때문에 돈이 모자랄 지경이다.

태완이는 술을 마시면서도 술값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술자리는 자신이 마련했고 친구들이 조금씩 낸 돈이 모자라면 나머지는 자신이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완이는 당장 술값이 어떻게 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꼴을 맨 정신으로는 바라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태완이는 질은 낮지만 돗수가 높고 싸기 때문에 농촌에서 즐겨 마시는 막소주와 막걸리를 들이 붓다 시피 마셔대고 있다.

신자와 병식이는 친구들이 흉을 보던말던 둘이서 소곤거리다가 안주를 집어 입에 넣어 주기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손을 꼭 잡기도 하면서 사랑 놀음에 익숙해진 연인들의 행동을 하고 있다.

“야, 이것들아 너희들끼리만 재미를 보지 말고 다 같이 재미를 보자”

영길이가 신자와 병식이의 애정행각에 심통이 났는지 제동을 건다.

“아이고, 영길이 너 질투가 나나 보지?”

신자가 미안하던지 대꾸를 한다.

“너그 하는 짓을 보마 그래 질투가 나지 안 나겠나?”

“그러기에 빨리 애인을 만들지 그랬어?”

신자는 병식이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노골적으로 선언하는 말투다.

그러고는 신자가 화장실에 가는 척하면서 밖으로 나갔고, 병식이가 뒤 따라 나가서는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는다.

밖에 나간 둘이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지 상상을 하는 태완이의 눈에 불똥이 튄다.

다음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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