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부-경복궁 근정전과 방탄소년단(BTS) 공연

 

2020년 9월, 미국 NBC방송사는 인기토크쇼 ‘더 투나잇 쇼 스타링 지미 팰런’(이하 팰런쇼)에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을 초청했다. 초대받은 그들은 ‘팰런쇼’에 출연하여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 부른 ’아이돌(IDOL)'무대를 공개했다. 이 공연은 당시 유튜브 2,400만회라는 경이로운 조회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짧은 시간에 가장 강렬하게 세계인들에게 우리의 문화유산을 각인시키는 파급 효과를 낳았다. 화려한 무대 속에서 그 존재감을 선보이는 경복궁 근정전은 세계인들에게는 방문하고픈 호기심의 장소로 비쳐질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문화유산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환기시켜주는 성찰의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근정전(勤政殿)은 조선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의 정전 건물로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거나,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궁궐 내 가장 중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1592년(선조25)발발한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된 후 폐허상태로 거의 270년간 방치되어 왔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근정전은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이 중건한 건물이다. 근정전 정면 계단에는 상하에 봉황을 새긴 답도(踏道)를 두었다. 이 계단을 오르면 화강암을 다듬어 2단으로 설치한 댓돌이 넓게 펼쳐져 있는데 위의 것을 상월대, 아래의 것을 하월대라 부른다. 상하 각 월대의 가장자리에는 돌난간을 사방에 둘렀다. 그리고 그 돌난간 기둥과 층계 좌우의 돌기둥의 머리 위에는 동물조각을 새겼다.

월대 난간에 새긴 동물조각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것은 사신상과 십이지상이다. 사신(四神)상은 동남서북의 네 방위를 다스리면서 우주의 질서를 받쳐주는 상상의 동물이며, 십이지상은 시간과 방위 개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동물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배치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기준은 근정전 내부 천장에 조각된 황룡에서 찾을 수 있다. 황룡은 근정전의 동쪽 출입문에서 보면 가장 잘 보인다. 황룡을 기준으로 전후좌우 연장선을 그어보면 상월대의 계단 위 돌기둥 머리 위에 조각된 동물들이 나타난다. 이들이 사신상이다. 즉, 동방의 청룡(靑龍), 남방의 주작(朱雀), 서방의 백호(白虎), 마지막으로 북방의 현무(玄武)상이다. 이어서 각각의 사신상이 있는 위치에서 바로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 하월대의 돌기둥 머리위에서 동남서북을 나타내는 십이지신상을 만날 수 있다. 즉, 토끼(동), 말(남), 닭(서), 그리고 쥐(북)의 조형물이다. 결국 상월대에는 하늘을 수호하는 사신상이, 하월대에는 땅을 지키는 십이지신상을 각각의 방위에 맞게 배치했다.

동남서북에 해당되는 조형물을 상,하월대에서 확인한 후, 십이지신상 가운데 남은 동물들을찾으려면 조금 복잡해진다. 근정전 내부 천장에는 황룡이 있고, 남쪽 두 번째 계단에는 호랑이가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십이지가운데 용과 호랑이는 월대의 같은 선상에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생략한 듯하다. 이제 남은 동물들은 소, 뱀, 양, 원숭이, 개, 돼지 등이다. 이 가운데 개와 돼지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렇다면 나머지 동물 소, 뱀, 양, 원숭이는 어디에 있을까? 이들은 동남쪽과 서남쪽의 상하월대 계단 돌기둥머리 위에 일직선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동입서출의 원리에 따라서 소-뱀-양-원숭이 순서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지금까지 필자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경복궁에 관한 강의를 하거나 답사 지도를 해 왔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와세다대학교 아카이브에 ‘경복궁 영건일기’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경복궁 영건일기란 1865년(고종2) 4월부터 1868년(고종5) 7월까지 경복궁 공사과정을 시간순서에 따라 기록한 문서로써 총9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토대로 2018년에는 관련논문이 등장했으며, 2019년 서울역사편찬원에서는 번역 작업을 완성했다.

경복궁 근정전 상,하월대 동물상에 대한 기존의 학설과 영건일기에 기록된 내용을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그 동안 십이지신상이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사실은 고대 동양인들이 인식한 하늘의 별자리 28수에 해당하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몇몇 동물상에 대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먼저 사신사 아래층의 조각상인 토끼(동), 말(남), 닭(서), 그리고 쥐(북)는 십이지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 28수에 포함된 동물이다. 왜냐하면 28수에도 방일토(토끼), 성일마(말), 묘일계(닭), 그리고 허일서(쥐)라는 명칭으로 이 동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남쪽과 서남쪽의 상하월대 계단에 존재하는 소-뱀-양-원숭이는 실제로 28수의 동물에 해당하는 낙타-교룡-랑(이리)-원숭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쪽 계단 1층의 동물은 정확한 명칭을 몰라 ‘서수’라고 했는데 영건일기에서는 1층-해치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이상한 점은, 남쪽 2층-말, 3층-안(들개), 4층-주작(봉황)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실제 현장에서 관찰하면 4층-주작(봉황)은 이견이 없지만 2층-호랑이, 3층-말 형상 같은데, 이 부분은 영건일기에서 착오를 일으킨 것인지 다른 사연이 있는지 좀 더 검토를 해야 할 듯하다.

한자어로 임금 자리에 오르는 것을 등극(登極)이라 한다. 이때 극(極)은 북극성을 의미한다. 이처럼 고대 동양에서 임금은 천명(天命)을 받고 지상에 내려와 바른 정치를 펼치는 위대한

존재로서 하늘에 비치는 북극성과 같은 위상으로 인식했다. 이런 천손(天孫)의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장소가 경복궁 근정전이다. 7인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방탄소년단(BTS)이 근정전 앞마당에서 펼친 공연을 응시하면서, 문화가 국력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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