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고뇌하고 인내하며 묵묵히 걸어온 묵향의 길

죽헌이 창조한 고유의 한글서체 죽(竹)체 개발

임진대첩계사순의단 비문 국한문 23,000여자 개인이 쓴 단일장소 세계최고 기록

서예대가 죽헌 정문장
서예대가 죽헌 정문장

 

대한민국 서예대전(국전)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국내 대표적 서예대회의 심사위원과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상남도서예가협회를 창립한 평생서력의 원로 서예가 죽헌은 지금도 후학양성에 붓을 휘두르고 있다.

옛 성현들의 품격있는 창작세계를 한지 위에 잔잔한 먹빛으로 아름다운 글귀 한 소절 한 소절을 새겨내는 고뇌의 서예가 죽헌 정문장 선생을 본지 류재주 편집국장이 만났다.

 

죽헌 정문장 작가가 직접 지어 쓴 한시 진주성 만추(晉州城 晩秋)진주성에 가을 깊어가니낙엽 어지러이 흩날리네촉석루에는 충신의 공적 남아있고의암에는 논개의 정 어려있네들꽃은 스스로 피었다 지고강의 달은 몇 전이나 차고 기울었나지난 일 누구에게 물어보랴홀로 시 한 수 지어보네
죽헌 정문장 작가가 직접 지어 쓴 한시 진주성 만추(晉州城 晩秋)진주성에 가을 깊어가니낙엽 어지러이 흩날리네촉석루에는 충신의 공적 남아있고의암에는 논개의 정 어려있네들꽃은 스스로 피었다 지고강의 달은 몇 전이나 차고 기울었나지난 일 누구에게 물어보랴홀로 시 한 수 지어보네

 

죽헌 정문장 서예가는 전통 가문의 후예로 논개의 절의를 기린 `의암사적비문’을 지은 명암 정식 공의 후예로 꿋꿋한 선비정신을 이어오고 있으며 개성적인 필치로 지역의 서단을 이끌어 오고 있는 대한민국 원로 서예작가이다.

서예를 계속하는 이유는 “나 자신의 개성적인 필치의 발전과 경상남도는 물론 우리나라 서예문맥을 끊김없이 이어나가고자 붓을 들고 있으며 또한 후학양성을 그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는 원로 서예작가 정문장 작가의 서예세계를 들여다 본다.

진주성전투의 상징적인 조형물로써 1987년 완공된 진주성내 임진대첩계사순의단에는 국한문 혼용체로 글자수 약 23,000여자가 쓰여져 있다. 이는 죽헌이 약 6개월에 걸쳐 완성한 작품으로 한사람이 단일 장소에서 쓴 글씨로서는 세계최고라는 평가다.

뿐만 아니라 진주의 유수 문화재급 건물과 기념비 등에는 그의 글체를 만날 수가 있다.

죽헌묵연회 작품전시회에서 제자들과 함께
죽헌묵연회 작품전시회에서 제자들과 함께

 

특히 40여년 전 1982년 죽헌서예학원을 열어 2022년 현재 36회 회원전을 열기까지 약 3,000여명의 후학을 양성하며 도내 서예계를 이끌어 왔다.

죽헌묵연회는 진주시 신안동 소재 죽헌서예학원에서 지필묵과 쉼없이 어울린 죽헌 제자들의 모임으로 초중고학생들은 물론 50~60대 은퇴세대까지 넓은 폭의 세대가 함께하고 있다. 1982년 설립한 죽헌서예학원은 서예를 연마한 회원들로 구성돼 회원간 서예 정서함양, 서예의 저변확대를 위해 연구하는 모임으로. 지난 1983년 창립전을 시작으로 해마다 작품전을 개최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적으로 서예인구가 줄고 있는데 반해 죽헌묵연회의 회원은 점점 늘고 있다. 학생들부터 은퇴한 퇴직자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죽헌묵연회는 40년동안 진주서단의 발전을 견인해왔다.

올해 개최하는 죽헌묵연회 전시회도 한문(해서, 행서, 예서, 전서, 초서), 한글(정자, 흘림, 고체, 창작체), 전각, 서각 등 회원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장에는 찬조작품으로 정문장 원장 작품이 선보여질 뿐만 아니라 지역원로 작가들도 초대작가로 참여한다.

“코로나 역병도 묵연회의 도약의 몸짓 날개짓으로 서예의 묵향에 짖눌려 꺾인 이즈음 우리 도민들에게 묵향을 안겨드리고자 작품전을 열었다”고 밝혔다.

특히 죽헌묵연전에서만 볼 수 있는 한글서체 죽(竹)체는 죽헌 선생이 직접 창작하여 만든 고유의 한글서체로 한글체 기본이 되는 궁체, 고체, 흘림체 등을 종합해 한국사람이 쉽게 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죽헌만의 묵향을 맡을 수 있는 고유의 한글서체이다.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제33회 죽헌묵연회 작품전시회 광경
경상남도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한 제33회 죽헌묵연회 작품전시회 광경

 

전시회를 준비한 죽헌묵연회장은 “한없는 고뇌와 인내로 묵묵히 걸어온 묵향의 길, 오늘 저마다 애써 짜낸 한지와 비단 한 폭씩 펼쳐들고 겨울 햇살에 말리고 있다. 서정이 아름다운 겨울 남강변 죽헌묵연전이 열리고 있는 아늑한 전시장의 ᅟᅵᆽ도편달을 바란다”고 전했다.

 

붓끝에 담긴 독도수호 정신 마음에 새겨 넣어

죽헌의 작품 독도박물관에 상설 전시

 

울릉도 독도박물관에는 독도관련 죽헌의 작품 수십점이 상설 전시되어 있다. 죽헌은 경남지역은 물론 대한민국 전역에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해 왔다. 지난 2009년에는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에 독도관련 작품 수십 점을 기증하여 상설전시가 되고 있다.

지역의 서단을 이끌어 오고 있는 원로 서예작가인 죽헌은 젊은 시기인 2005년부터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 왔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에 많은 국민들이 공분을 느끼며 규탄을 하기도 했지만, 유야무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죽헌은 이때 애국의 정신으로 독도를 위하여 붓을 들었다. 그리고“붓끝에 담긴 독도수호 정신”마음에 새겨 넣은 작품을 창작하여 전시회를 거쳐 독도박물관에 기증하여 상설 전시가 되고 있다.

 

-죽헌의 서예관과 활동 서력을 들어본다-

▢편집국장: 1982년 서예학원을 개원한지 올해 40주년이 넘었는데 서예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죽헌: 본래 진주는 예전부터 명필들로 이름이 있는 도시였다. 1950년~1960년대 까지만 해도 진주에 서예로 견줄 도시는 없었다. 그만큼 유명한 문인들이 많았고, 그 당시 문화예술 쪽으로는 전국 톱이다.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도 그래서 진주에서 생긴 것이다. 근래들어 한문사용이 줄어들고 서예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음에 서예의 문맥이 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우리 묵연회를 통하여 진주의 서예 문맥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계속 서예를 연구하고 또한 나 자신도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집국장: 그림은 화풍이라고 하는데 서예풍은? 주로 쓰는 서예체는?

▢죽헌: 서예는 종류가 다양하고 폭이 넓다. 크게 4가지로 나눈다면 전서, 예서, 해서, 행서가 있는데 나는 특정한 서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혼용체를 많이 쓰고 있다.

▢편집국장: 서예인들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는데 왜 줄고 있는지?

▢죽헌: 요즘 젊은이들은 한자공부를 안 하고 있다. 서예는 한자를 기본으로 하여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젊은 서예인들이 줄어들고 있다. 서예는 적어도 30년은 해야 비로소 실력이 나오며 세월이 지나야 비로소 글씨를 알고 무르익은 글씨를 쓸 수 있다.

소년 문장은 있어도 소년 명필은 없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어려서 재능이 있어서 문장은 쓸 수 있지만 무르익은 글씨체는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서예는 세월이 실력이라고 봐도 무관하다.

▢편집국장: 죽헌선생의 주요 활동 서력을 소개 해 달라?

▢죽헌: 우선 서예학원을 열고 제자 양성을 해 온지가 40여년이 되었다. 묵연회 회원작품전을 개최해 온 것도 36회째가 되고 있다. 그동안 약 3000여명의 제자를 양성해 왔다.

주요 활동으로는 대한민국 서예대전(국전) 작품 대상을 거쳐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서예협회 경상남도지회장과 경남서예가협회 창립회장을 역임했다. 그 외 도내 각종 대회에서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장을 맡고 서예인 대상을 받았었지만 무엇보다도 서예학원을 비롯 경상대학교와 진주교육대학교, 진주향교 등지에서 서예 강사를 맡아 제자 양성을 해 온 일이 가장 보람되었다고 자부한다.

▢편집국장: 어떤 서예가로 평가를 받고자 하며 언제까지 서예를 할 예정인지?

▢죽헌: 대한민국에서 가장 활달하고 기운찬 글씨를 쓰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 모든 서체를 잘 다루는 평범한 서예작가가 되고자 희망한다면 과욕이 될까 우려스럽다.

[인터뷰 대담: 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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