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성 발톱과 핀셋

                                           교육학 박사 조문주
                                           교육학 박사 조문주

 

새벽에 잠이 깬다. 낮에 엄지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발톱 수리를 지금 해야겠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의자에 앉는다. 심심해서 책을 펼친다. 어릴 때 받은 상처 때문에 온 생을 아린 마음으로 살아야 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동감하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 보니 끝까지 읽게 되었고 어느새 날이 밝았다.

“발이 너무 불었나?”

부드러워진 발가락을 붙들고 자가 수술을 시작한다. 먼저 커트 칼날을 싹둑 날려 날을 예리하게 만든다. 그 칼끝으로 발톱 한쪽을 조금씩 깎는다. 어느 정도 깎고 나면 나의 강력한 무기인 핀셋을 들이민다. 핀셋으로 살을 파고든 발톱 조각을 들어서 올리는 거다. 다시 칼로 그 부분을 잘라내면 돌조각 같은 발톱 조각이 툭 떨어진다. 의사의 도움을 받아 수술해도 다시 살을 파고들기에 나만의 수술 방법으로 내성 발톱 문제를 해결하며 살고 있다.

나의 내성 발톱 수술은 전문가 수준이다. 이때 나의 핀셋이 큰 역할을 해낸다. 일반적인 핀셋으로는 할 수 없다. 이건 스테인리스로 된 특수 핀셋이다. 강해서 휘청거리지도 않고 끝이 뾰족하고 이가 잘 맞아서 가시도 뽑아낼 수 있다. 나의 소중한 보물이다.

스무 살에 반도체 공장을 다니면서 이 핀셋을 만났다. 트랜지스터 꼭지를 집어서 이름이 인쇄된 상태를 알아보는 데 유용하다.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라디오에 이 트랜지스터를 끼울 때는 보통의 핀셋은 힘이 약해 어림도 없다. 내 엄지발톱보다 더 단단하고 끝이 뾰족하여 이가 잘 맞다. 그래서 에러 없이 부품조립이 된다. 내 손에 익숙한 거라 더 편하다. 잃어버릴까 봐 립스틱보다 더 소중하게 손가방에 넣어 다녔던 거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빼딱 구두를 신고 폼 잡을 때 발톱이 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고 했지? 내 살이 발톱을 이길 거라 여기며 참다가 곪아 수술도 했다. 수술 후에도 발톱이 자라나면 발가락 살이 벌겋게 열을 낸다. 그러다 이 핀셋이 나선 거다. 이제 조금만 아픈 기색이 있으면 미리 핀셋을 찾는다. 내 발톱을 위한 소중한 기구이기에 이사할 때도 안경 닦이에 싸서 잘 모셨다. 이후 선생 하는 내 손가방 속 필수품이 되었다.

이 핀셋은 강함과 약함이 다 가능하다. 아이들이 교실 바닥에서 미끄럼 타다 나무 가시에 찔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가시도 빼주고 흔들리는 이빨도 빼주었다. 화단에서 놀던 큰아들 목뒤에 맞은 벌침도 빼주었다. 할머니 집에 와서 흙 놀이하던 손자의 발톱에 끼인 까만 때를 후벼주기도 했다.

핀셋이 나이 들었다고 낡은 게 아니다. 한 뼘 남짓한 손잡이 부분에 40년 전에 붙여둔 내 이름 테이프가 흔적만 남아있다. 손잡이 부분이 거무티티하고 색이 바래서 세월이 느껴지지만 성능은 그대로다. 주둥이 부분은 사포로 잘 닦아서 관리하니 새것처럼 반짝거린다. 내 발톱보다 더 단단하다고 해서 강함만 있는 게 아니다. 끝이 아주 부드럽게 잘 벌어지고 이가 잘 맞다. 살을 비집고 들어가 가시를 쏙 뽑아낼 정도로 예민하기도 하다. 스무 살 공장에서부터 내 손에 익어왔던 핀셋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믿지 않는다. 내 어릴 때 받은 상처와 공장 생활, 학교생활 등을 기억하면서, 내성 발톱을 치료해주고 가시와 하얀 세치 머리까지 뽑아주던 핀셋.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아이를 만나고, 육십을 넘어도 내 손맛을 기억해주는 핀셋이다.

내가 죽을 때 주머니 속에 넣어서 태워달라고 할 거다. 평생 힘들었던 내성 발톱까지 다 타버려도 핀셋은 남을 거다.

“여보, 내 몸에도 사리가 좀 나올듯하지 않나요? 고행한 스님처럼요.”

부모도 모르고 태어나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생이 사리를 만들어 낼듯하다. 나의 핀셋은 그때 사리를 주워 담는 데 쓰라고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안경집에 담아 가보로 남기고 싶다. 열심히 살면 꼭 좋은 날이 온다고.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보다 더 귀한 교훈을 줄듯하다. 누구든지 이런 핀셋 하나 정도 가져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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