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교육학 박사 조문주 (해인)

·초등교육코칭연구소장

·2022년 소태산문학상 대상 수상

·논설위원(문학)

 

 

 

 

“허수아비를 만들어 볼까요?”

아이들은 허수아비 만들 재료를 챙겼다. 각자 갖고 온 요구르트 통에 모래알을 넣으러 운동장으로 나갔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아다닌다.

“하늘이 깨끗해요.”

평소에 하늘을 올려다볼 여가 없이 지내는 아이들이다. 구름 없이 새파란 하늘이 가슴에 안긴다. 하늘로 한번 뛰어올라 보자고 하니 통을 바닥에 내려두는 아이와 들고 뛰는 아이 모두 다양하다. 폴짝거리며 뛰는 아이들의 배꼽이 웃는다. 노란 은행잎을 손에 모아 쥐고 부채처럼 팔랑거리기도 한다. 은행잎을 하늘로 다시 올려 날리는 아이도 있다. 분홍색 리본이 파란 하늘과 어울려 눈에 확 들어온다. 통에 모래 알갱이를 담고 자리에 교실로 들어온다.

“허수아비를 본 적이 있나요?”

아이들 모두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사진이나 그림에서 본 적이 있다. 교과서에도 나오지만 가을 들판에 허수아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참새가 없으니 허수아비도 없는 게 아닐까요?”

“그 참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황금 들판에서 볏 알 쪼아먹던 참새를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참새 쫓는 아이들 따라 놀다가 어느 날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논 가 언덕에 앉아 허수아비에 묶인 줄을 흔들거나 깡통을 두들기면 된다. 우리 곡식을 보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지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들로 나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서 허수아비 줄을 잡고 설렁설렁 흔든다. 깡통을 탕탕 두들긴다. 그러면 나락(벼) 속에 숨어 있던 참새들이 후루룩 날아오른다. 금방 다시 찾아온다. 계속 흔드니 팔도 아프고 심심하다. 가지고 간 책을 보기도 한다. 재미가 없다. 참새들이 계속 다시 날아오니 속이 상한다. 참새들은 아예 허수아비 어깨에 앉아서 논다. 참새 쫓으라고 세운 허수아비인데 참새들이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날 딱 하루만 허수아비랑 새 쫓기를 하고 다시는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도시로 나가 공부하고 결혼하고 직장 다니면서 들판의 참새는 관심 밖이었다. 눈에 띄는 들판이 황금색이면 가을이 왔다는 걸 느끼는 게 전부다. 어쩌다 밭에 얼기설기 엮어둔 금박은박 줄만 햇빛을 받아 희번덕일 뿐이다. 이제 허수아비는 가을 들판 그림 속에만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아이들과 허수아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두 팔을 벌리고 낡은 저고리를 입고 모자를 쓴다는 데 생각이 통했다. 모래알로 채운 통에 나무젓가락을 십자가 모양으로 꽂는다. 머리는 스티로폼 공이다. 기본 뼈대가 만들어지고 아이들이 알아서 꾸민다. 모자 대신 색종이로 긴 머리카락을 붙인다. 노란 은행잎을 모자로 쓰는 아이, 두 팔로 쓰는 아이, 허리춤에 치마처럼 펼쳐 꽂는 아이 등 다양하다. 낡은 저고리는 없고 금박 스티커를 붙인 색종이 저고리를 입는다. 치마도 입힌다. 허수아비가 아니라 예쁜 인형이 된다.

“이빨이 드러나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 보세요.”

웃으면 행복해진다고 말하며 웃는 표정을 그려 넣는다. 행복한 허수아비가 들판 대신에 교실 뒤 진열장으로 줄을 선다. 예쁘다. 균형을 잡지 못해서 넘어지는 대로 귀엽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점심을 먹고 돌아온 교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한 개구쟁이가 교실에서 공을 차다가 진열해둔 허수아비 모래통들을 쏟아버린 것이다. 교실 바닥엔 모래 알갱이가 쫘악 흩어져있고 허수아비 몇은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난감하다. 허수아비는 들판에서도 서지 못하고 아이들 교실에서도 설 곳이 없다. 모든 허수아비를 게시판 한쪽으로 빽빽하게 핀으로 꽂아 주었다. 그래도 허수아비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있으니 보는 우리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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