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편]

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6.복수

1.

태완이는 집 마당 한쪽 옆에 있는 수돗가에 엉거주춤 서서 자신의 손과 얼굴에 묻은 피를 씻어 내고 옷에 남아 있는 피를 닦아 낸다.

바지 가랑이에 떡이 되어 묻은 피는 물 묻은 손으로는 닦아지지 않는다.

흐르는 수돗물에 바지 가랑이를 대고 피를 닦아 낸다. 그것은 말이 닦아내는 것이지 빠는 거와 다름이 없을 정도다.

피떡이 된 바지 가랑이를 수돗물에 대고 손으로 빨아 대자 미끈미끈하고 기분 나쁜 감촉이 온몸에 전율처럼 흐른다. 미끈거릴 때 마다 몸에서 소름이 돋아난다.

미끈거리는 것은 뒷전으로 하고 죽음처럼 번져 오는 역겨운 피냄새가 콧구멍을 통해 텅비어 버린 머릿속을 온통 채워 넣는다

태완이는 역겨운 냄새가 올라   마다 헛구역질을 하고 머리통 속에 꽉 차버린 피 냄새를 털어 내기라도 하듯 연방 구역질과 재채기가 나오려 하지만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본능이 헛구역질과 재채기를 도로 삼켜 넣는다

수돗간이 벌겋게 물들면서 핏물이 빠른 속도로 하수구를 빠져 나간다.

빨래를 하려고 갖다 놓은 빨래 대야에서 걸레를 찾아 물을 적신 후 여기저기 묻은 피를 닦아낸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려다 말고 급하게 수도꼭지에서 입을 떼고 대신 손으로 수돗물을 받아 입 주변 얼굴을 다시 씻어 낸다

수돗간에 엎드려 얼굴을 씻어 내던 태완이가 갑자기 씻는 동작을 멈춘다.

그런 자세로 한참을 엎드려 있던 태완이는 갑자기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였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몸을 가누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떨려 온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사람을 죽였나, 정말로 내가 사람을 죽였는가? 아니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할매에 대하여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할매는 태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정말 좋은 분이다. 할매한테 저항을 하지 않는 한 할매는 태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해 주었다.

여느 부잣집 아이보다 더 좋은 것을 먹었고, 더 좋은 장난감을 가졌으며, 더 좋은 학용품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런 할매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어젯밤 꿈에서 신자를 죽였는데, 할매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것도 꿈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손과 얼굴, 옷에 묻어 있는 피는 멧돼지나 고라니 새끼를 잡으면서 묻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할매 처럼 생긴 여우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자신이 죽인 것은 여우이거나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나서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는 고라니라고 생각한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오른손으로 입고 있는 국방색 군복 바지의 앞주머니 부분을 더듬어 확인한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두 손으로 확인할 자신이 없어 한 손으로만 확인을 한다.

다시 왼손으로 왼쪽 주머니를 확인 한다. 왼쪽 주머니에는 어젯밤 피우던 담배 갑 외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면 그렇지...”

안도의 숨을 쉬면서 역시 착각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뒷주머니에 손을 갖다 댄다.

무엇인가 두툼한 것이 손에 잡힌다. 갑자기 손이 부들부들 떨려 온다.

태완이는 아니다, 아니다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힘을 주어 꽉 잡아 본다.

적당히 탄력 있게 꼬부라지는 것이 분명히 현금 뭉치의 느낌이 온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에 잡혀 있는 것은 분명히 돈 뭉치가 맞다.

태완이는 주머니에 든 것은 돈이 아니고 종이 뭉치라고 생각한다.

돈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 있을 리가 없다. 아니 돈이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안돼..., 안 된다 말이야

태완이는 차마 그걸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도리질을 하면서 안 돼, 안 돼소리를 되풀이 하지만 그 소리는 울먹이는 울음에 묻혀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냥 짐승의 울음 마냥 웅웅거리는 소리로 밖에 나오지 않는다.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는다.

좀 전에 바지를 씻으면서 흘린 물이 스며들어 엉덩이가 젖어 오는 느낌이 든다.

그래도 태완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늘은 해를 잡아먹었고, 주변의 밝은 모든 것을 집어 삼켜 남은 것은 어둠뿐이다.

아직 달도 뜨지 않았다.

아니 해가 달도 잡아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스럼한 어둠 속에서 떨고 있는 자신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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