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빚어낸 맛, 막걸리의 인문학 (Ⅱ)

막걸리는 막 걸러서 먹는 술, 정제하지 않은 술이라는 뜻이다.

걸러낸 후, 다시 한 번 증류하면 증류주, 소주(燒酒)가 된다.

소주는 극도로 귀한 술이어서 일반 세민(細民)으로서는 만나기 힘들었다.

막걸리는 불확실하다. 같은 날, 같은 사람이,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담근 술도 독마다 술맛이 다르다.

이전에 담갔던 술과 오늘 담근 술의 맛, 색깔 등이 다른 경우도 흔하다.

집집이 막걸리 맛이 다른 것도 당연하다. 이런 부분이 바로 막걸리의 열려 있는 불확실성, 개방성이다.

개방성, 다양성의 매력 지닌 술. 막걸리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룩(효모)을 미지근한 물에 풀어서 고두밥과 섞는다. 수분을 적당히 더한 다음, 옹기 등에 담아둔다. 적절한 온도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술이 괴기 시작한다. 뽀글뽀글 술이 숨을 쉰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이산화탄소 거품이다.

술을 짜는과정은 남아 있는 고형분과 액체 술을 가르는 과정이다.

걸러낸 액체가 바로 술, 막걸리다. 남은 고형 성분은 술지게미다.

압맥기는 보리를 납작하게 만드는 도구이며 용수()는 싸리나 대쪽으로 결어 만드는 도구로, 간장이나 술을 거를 때 사용했다.

막걸리에 필요한 재료는 고두밥용 쌀과 누룩, 물이다.

특히 쌀은 여름철 8시간, 겨울철 10시간 정도 불려 수분이 충분히 스며들게 하고, 쪄낸 뒤 잘 펴서 식혀야 한다.

일정 기간 숙성시키면 막걸리 맛은 정제되고 순화된다. 이른바 제대로 익힌 술이다.

물을 섞지 않으면 무회주(無灰酒), 순료(醇醪)이다.

물을 섞으면 박주, 엷은 술이 된다. 우리 선조들이 순료만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순료가 좋기는 하지만, 박주나 험한 술이라고 해서 낮춰 보지 않았다.

산료(山醪)’는 산골에서 막 담근, 험한 술이다. 한석봉이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라고 하는 바로 그 박주.

산촌에서 산채와 더불어 마셨으니 산촌의 막걸리, 산료다.

조선시대 문신 조임도(1585~1664)간송집의 시에서 산료를 이야기한다.

세상 사람들은 (무릉)도원이 좋다지만/ 세상사 잊을 만한 도원은 만나지 못했네/ 산촌 막걸리에 취해 세상사 잊을 수만 있다면/ 사람 사는 곳 어딘들 도원이 아니랴?

산료의 또 다른 이름은 촌료다. ‘촌료는 시골에서 담근 술이다. 계곡 장유(1588~1587)계곡선생집에서 시골 막걸리[] 시금털털하긴 해도/ 그 속에 묘한 맛 들어 있나니라고 했다. 시골 막걸리는 시금털털하고 정교하지 않지만, 그 속에 묘한 맛이 있다.

농암 김창협(1651~1708)의 시 이별을 앞두고 즉흥으로 짓다는 시골 막걸리[]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준다.

시골 막걸리 사 오니 병마개는 풀 뭉치/ 해 저문 청산에서 이별 술을 따르네/ 그대도 봄 강 경치 좋아함을 알겠으니/ 미수(渼水)가 정자에서 다시 만나세.

우리 선조들은 순료, 박주, 촌료, 산료를 가리지 않았다. 이름만 다를 뿐 모두 막걸리였다. 담글 때마다 달라지는 술, 물을 섞어도, 섞지 않아도 모두 마실만한 술, 막걸리의 매력이다.

[지리산막걸리학교 교수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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