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운명 - 2
“태완아” 봉식이 아버지는 지서를 부를 때 항상 아들 이름을 부른다.
퍼뜩 정신을 차린 지서가 대답한다.
“형님 먼저 가소, 내 곧 따라 갈꺼임다”
“알았소, 내 먼저 갈꺼인게 가고 싶으면 가고, 바쁜 일이 있으면 마소 잉.”
사람들이 우루루 산으로 올라가는 소리가 귓전으로 들린다.
막연하지만 불길한 예감을 느낀 지서는 산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행여 수상한 낌새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태완이 방으로 들어가서 방을 뒤진다.
그러나 평소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약간은 안심이 된다.
태완이 엄마도 불길한 예감을 받았는지 태완이 방으로 빼꼼 고개를 들이 밀면서
“뭐라도 있소?” 하고 묻는다.
“있기는 뭐가 있을끼고, 그냥 한번 들어와 봤지.”
“그나저나 아는 어디 갔노?” “밥은 묵고 나갔나?”
“요즘 아가 이상한 것 같지는 않던가? 지서는 한꺼번에 질문을 쏟아 낸다.
아 나도 밭일 하고 이제 들어오는 길인데 아가 밥은 어떻게 묵소?“
“혹시 지 혼자라도 챙겨 묵고 나갔는가 싶어서 묻는 거제.” 버럭 역정을 낸다.
“와 나한테 씰데 없이 성을 내고 그라요?”
태완이 엄마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20여 년을 친정 어머니같이, 때로는 언니같이 지내던 할매가 밤이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것도 마음이 걸리지만 밤에 나타난 일련의 상황 전개가 결코 할매의 일만으로는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거대한 폭풍우가,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이 집안으로 밀려들어 집안을 풍지박산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태완이 엄마는 자꾸만 떠오르는 불길한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하여 부엌으로 가서 쌀을 씻어 놓고 헛간으로 장작 몇 개를 더 가지러 가다가 어둠이 내려앉은 멍석 위에 무엇인가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식이 어떤 모습으로 있건 에미는 자식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 자식이 에미가 오는 것을 보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는 것은 보통의 상황은 아니다.
태완이 엄마는 못 본척하고 장작 몇 개를 가져와서 부엌에 갖다 놓고 그때 까지도 태완이 방의 문턱에 걸터 앉아 담배만 뻐끔이고 있는 지서에게 살그머니 다가간다.
“보이소, 태완이 아부지예, 태완이가 있는 것 갔심더”
지서는 담배를 지긋이 물고 불길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태완이 엄마의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선다.
“어디?, 태완이가 있다고, 시방 어디 있노? 어디서 밨노?”
“헛간이라예, 헛간에 있는거 같심더”
“내가 아까 지게를 갖다 놓으러 헛간에 들어가도 태완이를 못 봤는데 ... 니, 태완이를 봤나?”
“내가 장작을 가지러 헛간에 들어갔는데 헛간 저 안쪽 장작더미 뒤에 멍석이 안 있능교, 헛간 구석쟁이 멍석 위에 분명히 태완이가 웅크리고 있었심더”
“와 아를 보고 그냥 왔노?”
“내사 마 하도 놀랐고, 또 아가 숨어 있는 것 같아서 부를 용기가 안 났심더”
“아가 와 거기 숨어 있다 카더노”
“내가 우째 알겠능교, 물어 보도 안했는데.”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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