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 그녀는 살 수 있었다. 비극을 막을 방법은 없었나?

법학박사 허영희한국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법학박사 허영희한국국제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지난 9월 14일 밤 9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성 화장실에서 동료 역무원 스토킹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이후 그 책임 소재를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젠더폭력예방교육원장과 폭력예방통합교육 전문강사로서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한국국제대 경찰행정학과 법학박사 허영희 교수를 만나 사건에 얽혀 있는 문제점을 짚어본다.

(편집국장) 교수님.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을 간단히 요약해 주시겠습니까?

(허영희) 2018년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한 31세의 전주환이라는 역무원이 입사동기인 여성에게 2년 넘게 스토킹을 하면서 만남을 강요하고, 불법촬영한 여성의 신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을 하다 고소를 당해 재판을 받고 있던 중 순찰을 돌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간 여성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편집국장) 스토킹, 불법촬영물 유포·협박, 그리고 살인...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도 사회적 이슈가 됐었는데, 강남역 살인사건과 이번 신당역 사건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허영희)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은 34세의 남성이 생면부지의 여성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우연히 그 자리에 그 여성이 있었기 때문에 살해당한 ‘묻지마 범죄’ 유형으로 볼 수 있죠. 반면에 이번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편집국장) 묻지마 살인도 문제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직장 동료 사이에서 발생한 살인은 더 심각해 보이는데요.

(허영희) 둘 다 심각한 사건입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고 봐야 합니다.

(편집국장) 이런 사건의 살인범들은 개인의 일탈 문제로 봐야 하지 않나요? 개인의 문제라고 보여지는데요?

(허영희) 설문조사를 받아보면, 개인의 일탈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긴해요. 설령 가해자 개인의 성향과 일탈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 사람이 양육되어지고 교육받았길래 타인에게 해를 가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성차별적 양육관과 교육관, 폭력을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사회문제가 저변에 깔려있어요. 그래서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하는 것이죠.

(편집국장)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허영희) 신당역 역무원 살해사건은 스토킹에서 시작됐잖아요? 스토킹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가 공포예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좋아하면 따라다닐 수도 있지’라며 스토킹행위를 폭력으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많아요. 이모 서울시의원이 말한 것처럼 ‘좋아하는데 안받아주니까, 스토킹도 하고 불법촬영도 했다’는 식의 생각을 해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는 스토커가 자신의 행위를 범죄라고 인식할까요? 그래서 사회적 문제라는 것입니다.

 

(편집국장)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문제군요. 사건이 발생하고 나니 역무원을 채용한 서울교통공사, 경찰, 사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던데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허영희) 서울교통공사의 결정적인 잘못은 경찰에서 보낸 수사개시통보서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동료 역무원간의 스토킹,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이 개입된 사건임을 알았다면, 무엇보다도 피해자 보호조치에 신경을 썼어야 했어요. 그런데 직위해제만 하고, 피해 여성의 동선을 알 수 있는 사내 내부망 접속을 차단시키지 않았어요. 사내 내부망 접속만 차단했어도 당직근무 장소와 시간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그날 그 여성은 죽지 않았을 겁니다.

(편집국장) 사내 전산망 접속을 막았더라면 수십 개나 되는 역사 중 어디서 근무하는지 쉽게 알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참 아쉽네요. 경찰에 대해서 비난이 쏟아지는데, 이유는 무엇인가요?

(허영희) 2년 넘게 시달려온 피해자는 고소를 두 번 했어요. 첫 고소는 2021년 10월 7일에 했는데,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혐의였어요. 그 때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죠. 그런데 법원에서 기각을 시켜버려요. 해당 사건은 기소가 되어 재판이 진행되었구요. 그런데 전주환은 형량을 낮추기 위해 합의를 보려고 피해자를 또다시 괴롭혔어요. 그 즈음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었구요. 그래서 피해자는 2022년 1월에 스토킹범죄 혐의로 2차고소를 합니다. 스토킹범죄로 고소한 후에는 전주환의 괴롭힘은 더 집요했어요. 왜냐하면 스토킹범죄는 반의사불벌죄 즉, 합의를 보면 처벌을 받지 않거든요. 그래서 피해자는 합의를 봐달라는 전주환에게 또 다시 시달리게 된거죠. 그런데도 2차고소 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지도 않았어요. 이 지점에서 비난을 받는 것이구요.

(편집국장) 왜 구속영장 신청을 안했을까요? 첫 번째도 아니고 두 번째 고소인데요?

(허영희) 사건의 심각성을 못본거죠.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이 스토킹범죄보다 법정 형량이 높거든요. 경찰 판단에는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해도 기각되는데, 그보다 법정 형량이 낮은 스토킹범죄로 구속영장을 신청해봤자 기각될 것이라고 예단했을 겁니다. 이 지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편집국장) 그런데 법원은 왜 구속영장 발부를 안한거죠? 2년 넘게 스토킹을 하고, 불법촬영에다가 유포 협박까지 한 범죄자를 왜 풀어놓은건가요?

(허영희) 역무원이라는 신분이 있으니 도주할 우려가 없다,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사법부도 사건의 심각성을 읽어내지 못한거죠.

(편집국장) 스토킹범죄를 반의사불벌로 규정해놓은 법도 문제지만, 교수님이 전체적으로 일관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있네요. 그건 사건의 심각성을 못봤다는 것. 제가 잘 이해한건가요?

(허영희) 네. 정말 핵심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역무원 스토킹 살해사건은 수사기관과 사법부, 입법부의 관계자들이 성 인지 감수성을 갖지 않은데서 비롯됐다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편집국장) 성 인지 감수성이라...설명 부탁할게요.

(허영희) 폭력은 남을 괴롭히거나 가해를 하는 힘입니다. 폭력성은 차별과 불평등의 관계에서 나오고요. 그렇다면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해야 폭력을 막아낼 수 있겠죠? 성인지 감수성은 내 주변에 차별과 불평등한 것이 있는지 인지하고, 해소하려는 실천적 의지와 노력까지 함의하는 개념이에요. 다시말하면, 성인지 감수성을 가져야만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이죠. 성인지 감수성이 있어야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제대로 읽어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고, 나아가 폭력이 조장되거나 용인되는 사회분위기와 불평등한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편집국장) 성 인지 감수성을 가져야 성폭력을 막아낼 수 있다. 이렇게 정리를 하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인터뷰대담 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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