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강가에서 (2)

 

시인/수필가 조향옥경남 진주 출생2011년 《시와 경계》로 등단시집 『훔친달』 『남강의 시간』등2020년 경남문학 시 부문 작품상 수상
시인/수필가 조향옥경남 진주 출생2011년 《시와 경계》로 등단시집 『훔친달』 『남강의 시간』등2020년 경남문학 시 부문 작품상 수상

 

 

여름 강이었다.

강물이 줄어들면 빨랫돌들이 강물을 따라 조금씩 이동해 갔다.

우리들은 빨랫돌을 따라 갔다.

벼랑 끝 바위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한두 번 팔을 흔들다가 무릎을 구부리는 듯이 하다가 물총새처럼 머리를 내리꽂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언제 나올까? 어디서 나올까? 어른들은 안 죽을까? 죽는다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죽는다했는데......

신기하다. 신기한 것은 궁금하다. 궁금하면 해본다.

하루 종일 강에서 노는 남자애들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작은 등을 내놓고 어디에서나 저돌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찾아다니느라 긴 여름 해가 짧았다. 그을린 얼굴의 작은 눈 속에 빤짝이는 것들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무엇이 되고 싶고 무엇이든지 갖고 싶고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어떤 빛이었다.

모래와 물의 경계에 몰려다니는 송사리 떼를 고무신으로 재빨리 뜨면 신 안에 몇 마리씩 들어오는 송사리를 볼 때 느껴지는 희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작은 모래구멍을 파면 갱조개가 나왔다. 신기하다.

여름 강은 태양이 물속에서 물결무늬를 만드는 계절이었다. 무늬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잡히지 않는 빛 무늬는 모래와 물 사이에 있었다. 잡고 싶다.

조무래기 여자애들은 빨랫돌 옆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깊이 들어가면 안된다.’ 주의를 들어도 끼리끼리 몰려 물놀이에 정신을 팔았다.

‘누가 더 깊이 들어가나 해 볼래?’ ‘좋아’

발가락 사이 모래가 살살 움직이고 있었다. 한 발작 더 내딛는다, 모래는 스르르 밀려 내려가고 몸이 붕 떴다.

물속은 온통 연두빛. 태양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찬란한 빛줄기를 만들며 일렁거리고 있었다.

경쟁심은 발가락에서 나오는 것인가? 몇 낱의 머리카락으로 잡혀 나온 모래밭은 따뜻했다고 기억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된다. 성인의 주인은 호기심 가득 찬 아이들이다.

언제부턴가 더 늙지 않는 마음을 가진 성인은 겉모습만 늙어간다. 그러나 태생의 축복이 있다.

얼마나 대단한가! 반짝거리는 작은 눈빛 속에 가득 찬 것들은 어느 모르는 님이 주신 것이다.

한 생으로 한 개의 노둣돌로 주신 시간은 너무 짧다.

제 모양의 그릇에 담기는 강물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의 모습은 숭고하고 아름답고 힘겹고 고단하다. 그러나 감사하다. 뻐끔뻐끔 강물을 들여 마시는 피라미처럼 갱조개처럼 시끄러운 까치처럼 참새처럼 한그루 수양버들처럼 감사하다.

강물은 이제 얼지 않는다.

빨래터는 산책길로 바뀌었고 잘 다듬어진 공원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아름다운 나의 강을 전하고 싶다.

갈참나무 숲에서 함께 살던 마삭덩굴, 칡넝쿨은 아직 강둑에 나와 함께 살아있다.

나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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